과거에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 여 년 한반도를 옥죈 북한 핵 문제를 남북한이 상생하는 방식으로 풀어갈 기회 말이다.

가장 최근의 기회는 2009년 하반기 다가왔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출범 직후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도발에 직면했으나, 그해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북·미가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의 일괄타결을 모색해보자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북한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초청하자 미 국무부는 9월 들어 “미·북 양자 대화, 준비됐다”는 메시지를 날리며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 진행한 유엔 핵감축 정상회의를 불과 2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북·미 대화 기류 근저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핵 감축·비확산 의지가 깔렸다.

앞서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돌며 오바마 정부의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 중국은 환영했고, 한국 정부도 반대하지 않았다. 한 달 뒤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국 국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미 정부는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등이 주최한 세미나 참석용 비자를 선뜻 내줬다. 그리고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이던 성 김 북핵특사(현 주한 미 대사 지명자)를 세미나장에 보내 북·미 고위급 회담 의제 등을 논의토록 했다.

이런 오랜 준비 기간을 걸쳐 그해 12월 보즈워스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현 내각 부총리), 김계관 외무성 부상(현 제1부상)이 평양에서 처음으로 회동했다. 보즈워스의 평양 방문으로 대화 물꼬가 열린 양측의 관계 개선 움직임은 북한 고위 당국자의 미국 방문 문제를 논의하는 단계로 발전됐다. 이를 통해 북·미 양측의 이견을 조율한 뒤 6자회담을 열어 북핵 폐기 및 북·미 관계 정상화 등 일련의 조치들을 추진해 나간다는 게 미측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 초까지 흘렀던 북·미의 우호 기류는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지면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이번 주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한다. 2009년 12월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1년7개월 만에 이뤄지는 북·미 대화 재개다. 2009년 리근의 뉴욕 방문이 민간단체 회의 석상에서 미 당국자를 간접 대면하는 '트랙 1.5' 성격의 접촉이었다면 이번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공식 초청을 통한 '트랙 1' 대화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왼쪽)이 2011년 7월 뉴욕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무대에서 남북 비핵화 회담이 열린 만큼, 북·미 대화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북핵은 남북한 만의 양자 현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 카드를 만들어낸 이후 시종일관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과 담판짓는 협상 전술을 구사해왔다. 발리에서의 남북 비핵화 회담도 북한이 김계관과 보즈워스의 뉴욕 회담을 약속받고 응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2009년 리근의 방미 전후 상황을 장황하게 복기해 본 것은 최근의 김계관 방미 추진 정황이 그 당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장기 교착 상태인 북핵 현안의 진전 내지는 북한 발 위기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 북한이 지난해 말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도 검증이 시급한 현안이다. 한국도 더 이상 천안함 사건을 북핵 현안과 연계하기 힘든 처지다.

달라진 상황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환경이다. 지금은 정권 초반이 아니라 백악관이 2012년 오바마 재선을 염두에 두고 북핵 등 수많은 대선 변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임기 후반부다. 우리는 조지 W 부시 전임 행정부가 임기 말 북핵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한국을 따돌리고 일방적으로 대북 접촉을 밀어붙이다 낭패를 당한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긴밀한 한·미 공조만이 북한의 오판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한·미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간 북핵 협상 과정에서 수많은 기회를 발로 걷어차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무모한 핵실험과 대남 도발은 유엔과 유럽연합(EU), 미국, 한국 등의 다자·양자적 제재와 국제적 고립을 불렀다. 한·미 모두 북핵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는 하나,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겠다’는 원칙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대화 국면 속에서 북한이 남북 상생의 기회를 붙잡기를 기대한다.

조남규 워싱턴특파원

미국 의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8월 초 의회 여름 휴회 전에 한·미 FTA 이행법안(비준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 아래 의회를 압박하고 있으나, 공화당은 한·미 FTA 비준안과 함게 올린 ‘무역조정지원’(TAA) 제도 연장 조항을 따로 처리해야 한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FTA가 우여곡절 끝에 미 의회 비준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만나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움직임과 비준 전망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11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미 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백악관은 한·미 FTA 비준안을 다음 달 6일 미 의회의 여름 휴회 전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번엔 비준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나.

“전망이 매우 밝다. 긴 여행의 막바지에 서 있다.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TAA 제도 연장 문제를 한·미 FTA와 병합할 것인지, 분리해 처리할 것인지의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TAA 연장 조항을 포함한 한·미 FTA 비준안을 파나마, 콜롬비아 FTA 비준안과 함께 의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 사무실에서 막바지 절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원은 6월 말 TAA 이견을 절충했으며, 민주·공화 양당 모두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만큼 TAA를 포함한 한·미 FTA 비준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낙관한다.”

―미 의회의 여름 휴회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더욱이 의회는 정부의 채무상한 조정 협상으로 여유가 없지 않나.

“의회는 현재 정부 채무상한 조정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채 상한 조정과 한·미 FTA 비준안 현안을 다루는 백악관과 의회 협상팀은 같은 사람들이다. 한·미 FTA 협상은 정부 채무상한 증액 문제에 앞서 처리될 것으로 본다. 의회의 여름 휴회 전에 비준될 것으로 본다.”

―미 상공회의소는 그동안 한·미 FTA 비준을 위해 힘썼다. 어떤 활동들을 해왔나.

“미 국민들을 상대로 한 아웃리치(outreach) 활동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한덕수 주미 대사의 도움이 컸다. 우리는 한 대사와 함께 미 38개 주를 돌며 한·미 FTA 비준 필요성을 홍보하며 여론을 움직이려 애썼다. 한국 무역협회(KITA)와 한·미 경제연구소(KEI) 등도 방문지역 선정 단계에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방문지역에서는 그 지역에 소재한 한국 수출기업과 지역구 의원, 선거구민들을 상대로 한·미 FTA 필요성과 혜택을 설파했다. 미 국민은 일반적으로 통상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FTA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이 수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FTA가 긴요하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리려 노력했고, 그 결과 미 국민의 통상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한 대사의 한·미 FTA 아웃리치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을 텐데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매우 힘든 일정이었다. 38개 주를 돌면서 어떤 날엔 일정이 오전 4시30분에 시작될 때도 있었다. 알다시피 미국 여행은 일기가 불순한 관계로 수시로 항공기 운항이 취소된다. 그럴 때마다 한 대사는 투어 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방문 당시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4시간 가깝게 차로 이동하기도 했다. 한 대사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추진 중인 환태평양무역협정(TPP)에는 미국 외에 8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대사들과 매주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한 대사의 한·미 FTA 아웃리치 활동이 화제가 됐다. 대사들은 TPP 추진 과정에서 자신들도 한 대사를 벤치마킹하고 싶다면서 한 대사의 아웃리치 활동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한 대사와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솔직히 한 대사와는 20년지기라고 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한 대사는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총리를 역임하는 기간에 한 대사와 좋은 인연을 맺었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그런 인연이 자양분이 됐다. 훌륭한 파트너다. 한·미 FTA는 미 상공회의소의 역점 사업이다.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끼며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뛰었다.”

―한·미 FTA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미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들은 한·미 FTA를 좋은 협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지난해 12월 한·미 FTA를 재협상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꿨다. 이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한·미 FTA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 미 의회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어떤 의원들은 한국의 달라진 경제적 위상을 모른 채 한·미 FTA를 반대했다. 또 어떤 의원들은 북한 개성공단 제품들이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수출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중국 제품이 개성과 서울을 거쳐 미국에 자유롭게 수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이런 오해들이 의회를 움직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한·미 FTA의 혜택을 볼 수 있나.

“한·미 FTA 협정에 따르면 현재로선 북한 생산 제품은 한·미 FTA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개성공단 제품이 한·미 FTA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우선 동의해야 하며, 미 의회가 승인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야 한다.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북한도 변화해서 FTA 혜택을 보게 되길 원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변화해야 한다.”

―미 상공회의소는 오바마 행정부와 갈등 관계에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통상 기업계와 행정부는 자연스런 긴장 관계다. 어느 당이 백악관을 차지해도 그렇다. 기업은 대체로 재정적으로 보수적이고 같은 지향을 지닌 공화당과 친한 것으로 사실이다. 우리도 민주당 보다는 공화당과 가깝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선거자금을 후원할 때는 철저히 의원들의 투표 성향을 토대로 결정한다. 친기업 성향 의원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지원한다. 민주당 소속 의원 중에도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다. 그 대표적 의원이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다.”

―한국에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인사 중 일부는 과거에 찬성했던 인사들이다. 노무현 정부 때 협상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있고, 당시 주요 협상 파트너가 지금은 국회에서 한·미 FTA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가 그렇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선뜻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FTA는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게임은 아니다. 과거엔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았다. 형님아우 정도의 불평등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동반자 관계다. 어느 한쪽만 전적으로 이익을 보고 다른 편은 손해보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한·미 FTA는 양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이다. 그래서 한국 국회에서도 종국엔 한·미 FTA를 비준해줄 것으로 믿는다.”

―한·미 FTA 발효 이후의 바람직한 한·미 통상협력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하나.

“그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미국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호주, 싱가포르하고만 FTA를 맺고 있다. 한·미 FTA가 성사되면 한국과 세 번째 라인을 그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은 미국의 동북아 전진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과의 통상관계 개선 노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에게 한국은 매우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아시아 지역에서 통상 활동을 증진하고 싶다. 한국 역시 미국을 전진기지 삼아 캐나다와 중미, 남미 공략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미 FTA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필수적이다. 한·미 FTA는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노동계는 대체로 FTA에 부정적이다. 두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할아버님,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살아서 한국을 다시 찾고 싶구나.”

지난 19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북쪽에 위치한 ‘참전용사 마을’(Armed Forces Retirement Home).


                                                 해나 킴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맞아 기자와 함께 참전용사 마을을 찾은 해나 킴(한국명 김한나)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89)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 인연의 끈은 한국전쟁이었다. 쉐핀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참전해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2009년. 해나 킴은 쉐핀과 같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미 의회를 움직였다. 의회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를 통과시키기에 앞서 그는 연방하원 435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인연이었다. 지난해 한국전쟁 60주년 행사장에서 해나 킴을 봤다는 쉐핀은 그가 들어서자 반색하며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쉐핀은 “내 아들도 주한미군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했다”면서 “며느리도 한국 여성이라서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성은 김씨였는데 결혼한 뒤에 킴벌리가 됐다”면서 너털웃음을 했다. 휴게실에 모였던 다른 참전용사들도 쉐핀의 너스레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워싱턴 DC 참전용사 마을 입구. 한국전 참전용사 125명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650명의 퇴역 군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중 125명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는 “참전용사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이 83세”라면서 “해가 갈수록 주민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마을은 조지 워싱턴대 병원 등과 계약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역전의 용사들도 세월의 흐름만은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400명을 웃돌던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수도 최근 들어 급감 추세라고 한다.

6·25전쟁 기념일이 임박하면 참전용사 마을은 한국전쟁이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한국전쟁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엔 온통 한국전 기념 행사와 공연 얘기로 만발했다. 당시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개최된 리틀 엔젤스 예술단 공연이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왓킨스는 “미군이 세계 여러 곳으로 파병됐지만 한국처럼 우리 같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나도 한국전 참전용사였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웃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전 참전용사 월터 킷슨은 “우리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정중하게 대접받았다”면서 “우리의 영혼을 울린 방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초청을 받은 킷슨 등 6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한동안 주민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참전용사 마을은 1851년 노병과 상이 군인들을 위한 보호 시설로 시작됐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별장이 눈에 띈다.
 

                                                                                                                        링컨 커티지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책상

‘사병들의 숙소’로 불렸던 이 건물은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으면서 ‘링컨 커티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병들의 안식처로 시작된 유래에 따라 지금도 장교들은 마을 주민이 될 수 없다. 참전용사 배우자도 입소 자격이 없어 통상 배우자와 사별한 참전용사들이 주민이 된다. 그래서일까. 참전용사 마을엔 노년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나 킴이 작별 인사를 하자 쉐핀은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해질 무렵 참전용사 마을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마음도 무거웠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

 



 

지난 5월22일(현지 시간)부터 사흘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에이팩) 연례총회를 취재하면서 유대계 미국인들의 저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이팩은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에이팩 연례총회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 연방 상·하원 지도부 등 미국의 수뇌부가 총출동한다. 미국 대통령의 에이팩 총회 참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재임 시절 에이팩 총회에서 ‘충성 서약’을 했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이스라엘 지지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곳도 에이팩이다.

 

 

 

 

 

 

                                                                                              <에이팩 반대 집회>


23일 만찬에는 350명이 넘는 연방 의원들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의원들은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이팩 개막식 연설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격앙시킨 ‘1967년 국경선’ 제안에 대해 해명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답보 상태인 중동 평화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으로 얻은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오해가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유엔 차원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이스라엘 편에 섰다. 미 국방부는 에이팩 총회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방어 구상 기술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중국에 관련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 속에서 미국의 기술 지원이 중단된 지 6년 만이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이란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막기 위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들 사안은 모두 에이팩이 올해 로비 목표로 선정한 것들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에이팩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에이팩의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력 때문이다.

연례총회에 참석한 1만여명의 회원들은 미 전역에서 선발된 유대계 미국인 대표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에이팩 조직은 미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결성돼 있으며 회원들이 자기 지역구 의원들을 움직인다”고 전했다. 미 언론은 7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조지 맥거번의 낙선을 에이팩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인용하곤 한다. 맥거번은 당시 F-15 전투기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판매하겠다는 지미 카터 미 행정부 조치에 동조했다가 에이팩의 ‘살생부’에 올랐다. 공화당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 찰스 퍼시는 팔레스타인과 협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에이팩이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영리했다.

올 연례총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격적인 ‘1967년 국경선’ 제안으로 미·이스라엘 관계가 서먹해진 가운데 개막됐으나 에이팩은 “우리는 유대인이기에 앞서 미국 시민”이라는 기조를 견지했다. 김 소장은 “에이팩은 총회 기간 내내 이스라엘을 편들기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이스라엘 관계가 악화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연방 하원의 유대계 의원이 민주당에는 30명 넘게 포진한 데 반해 공화당에는 에릭 켄터 원내대표가 유일하다. 에이팩이 유대계 후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공화당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원한 결과다.

에이팩은 50년대 초반 유대계 미국인과 의회 인사들의 친목 단체로 출발했다.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보니 초창기엔 갈등도 없지 않았다. 난관이 적지 않았지만 에이팩 리더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유대계 미국인들의 단결이 지금의 에이팩을 만들어냈다.

재미 한인 동포들의 수도 꾸준히 늘어 600만 미국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미 한인들의 영향력이 재미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은 아니다. 김 소장은 “재미 동포들이 에이팩과 같은 행사를 개최했을 때, 자비로 행사에 참석할 동포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내 한인과 유대인의 차이는 유대인들은 에이팩과 같은 영향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에 거주하는 250만 한인 동포를 명목상
대표하는 단체이자 미국 내 168개 한인회의 전·현직 회장 2천3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회장선거가 파행 속에 막을 내렸다.
지난 5월28일(현지시간)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 선거가 열린 시카고 북서교외
의 힐튼호텔은 입구에서부터 미국 각지에서 달려온 400여 명의 한인회장단으로 북적
거렸다.
이번 선거에는 애리조나주 한인회장 출신의 김재권(64) 미주총연 이사장과 조지
아주 오거스타 한인회장 출신의 유진철(57) 총연 부회장이 출마해 열띤 경쟁을 벌였
으며 김 후보가 임기 2년의 24대 회장에 당선됐다.
내년 4월 처음 도입되는 재외국민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때문
인지 일부에서는 김 후보를 민주당 후원을 받는 호남 출신으로, 유 후보를 한나라당
후원을 받는 영남 출신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두 후보 진영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보였다. 양측 모두 "오랜 시간 미주총연에
서 함께 일해와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도무지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미주총연 행사장 바로 옆 홀에서는 마침 한 유대인(Jewish) 가족이 주최한
'바르 미쯔바(Bar Mitzvah)' 파티가 열렸다. 회당에서 유대교 정통 의식에 따라 만
13세 생일을 기념하는 성인식을 거행한 후 자리를 옮겨 진행하는 이 파티에는 100여
명이 참석해 옆에서 치러지는 한인들의 선거 분위기를 지켜봤다.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한인들과 자주 비교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 잘하는 대표적인 민족이다.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큰 영
향력을 행사하며 살 수 있는 건 그들이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하기 때
문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미주총연 행사는 투표 결과 발표 이후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선거관리위원장이 김 후보의 당선을 선언하고 당선증을 전달한 직후
유 후보 지지자들이 행사장으로 뛰어들어와 "선거에 부정이 개입됐다"며 선거 무효
를 외쳤다.
이들은 "부재자 투표 발송지와 유권자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우편 봉투가 대량
발견됐고 김 후보 지지자의 중복 투표 증거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당선자 측은 "유 후보 측이 결과에 불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
다.
이로 인해 참석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행사장과 로비는 물론 호텔 1층이 모
두 술렁거렸다.
투표와 개표 작업이 진행된 별도의 방 입구에서는 언성 높인 항의가 제기되고
소란이 일면서 급기야 호텔 측 신고로 지역 경찰들이 두 차례나 출동하는 사태가 발
생했다.
이를 놓고 유 후보 진영의 한 회원은 "FBI(미 연방수사국)가 조사를 나왔다"는
웃지 못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경찰에 직접 확인한 결과 "우리는 단지 싸움을 말리
러 나왔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시카고 노스브룩 힐튼호텔 로비에서 '싸움하는' 일부 한인들 사이로 바르 미쯔
바 파티를 즐기는 유대인 아이들이 걸어 다녀 한눈으로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
2년 만에 열린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선거는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그
렇게 끝이 났다. 행사 주최 측은 파행에 대한 공식 설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일
부 참석자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차례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참석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
다.
유 후보 측은 "선관위가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을 경우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
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한인들의 화합을 명분으로 존재하는 비영리단체 한인회
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잦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1956년에 미국으로 건나와 뉴욕 롱아일랜드 한인회 2대 회장을 지낸 하세종(77
) 씨는 "앞으로 한국인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서 "미주총연은 한인 2, 3
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인 파워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icagorho@yna.co.kr


미국 정치권이 2012년 대선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재선 도전을 선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재선 캠프를 풀가동하고 있다. 최근 당 주자들의 교통정리가 이뤄지면서 공화당 진영의 대선 경선 구도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슈화하며 백악관과 민주당을 상대로 전초전을 벌이고 있다. 1971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이래 40년 동안 미국 정치 현장을 지켜온 찰스 랭걸 의원(민주·뉴욕)을 19일(현지 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만나 미국 정치를 주제로 환담했다.


찰스 랭걸 의원과 필자


-당신은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나를 진보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 그 질문엔 답변할 수 없다. 무엇이 진보주의인가?”

-진보주의자는 현 상황을 지속시키기보다는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도 바꾸길 원한다. 그들도 미국의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사회보장 제도를 나쁜 방향으로 뜯어고치려 한다. 문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누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느냐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누구도 항상 옳거나, 그를 수는 없다. 당신이 내 견해를 듣고싶다면 구체적으로 현안을 특정해서 물어야 한다.”

-당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몇몇 이슈에선 진보주의자다. 하지만 나는 (대다수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낙태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이나 제도의 희생자들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아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국가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들을 진보 진영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변하고 있다. 그는 희망과 비전, 삶의 질 향상을 설파한다. 하지만 현재 보수진영에선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없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한다고 보느냐. 수 많은 미국인이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실상 모든 정치인들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했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유권자들은 현역 정치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내쫓아 버렸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비는 쪼들리는데 자녀들마저 대학에서 중퇴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해보라. 꿈이 사라진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폭발했다.”

 

-내년 선거 전에 유권자들의 분노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나.

“원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권자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명과 관계없다. 중간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공화당이 지난해 석권한 지역들은 그보다 앞선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차지했던 곳이다. 시소게임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보나.

“누가 대항마로 나서느냐가 관건이나 재선 승리를 낙관한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공정한 납세 정책을 바란다고 믿는다.(공화당은 부유층 감세 지속을, 민주당은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 감세조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보장을 포함한 사회보장 정책을 추진하길 바라고 석유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로 인해 멕시코만 연안이 기름띠로 뒤덮히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공화당 주지사가 배출된 일부 주에서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채택되고 있다)은 헌법적 권리 이상의 천부적 권리라는 것이 대다수 미국인의 판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들(공화당)은 나처럼 믿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오바마 재선을 낙관하는 이유다.”

-최근 들어 미국 정치의 당파성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초당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날 선 대립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정치 갈등이 위험 수위다. 비정상적이다. 문제는 정치 갈등의 수위다. 일정 수준의 정치 갈등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정부의 운영 방식을 결정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보, 보수 진영의 치열한 갈등은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정치 갈등은 해롭지 않다.”

 

찰스 랭걸 의원이 19일(현지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한국전쟁 50주년 기념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랭걸 의원 뒤로 사진을 찍는 필자의 모습이 비친다.

-한국은 민주주의 운영 측면에서 결함이 노정되고 있다. 국회의사당 내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할 정도다. 한국 정치권에 해주고싶은 말은 없는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긴장을 푸세요.(웃음). 한국에서 이뤄지는 어떤 일이든 한국인들이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

-미 연방하원 선거에서 내리 21선(미 연방하원의원 임기는 2년)을 기록했다. 오랜 의정 생활에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 같다.

“지난 세월 의정 활동을 하면서 내가 정치적으로 직면했던 많은 문제는 대부분 가치, 철학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보장받아야 한다. 미국인이라면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론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은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시절에서 흑인 대통령이 배출된 시대로 진보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농담조로) 처음으로 의원 선서할 때였다.(웃음) 내가 추진한 법안들이 통과되는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주의)를 철폐시키기 위해 남아공 정부와 남아공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에 징벌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주도했다. 결국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다. 큰 보람을 느꼈다. 아이티 군부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민권법은 거리에서 울부짖던 이들의 인권을 법제화한 것이다. 내 법안들이 가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당신도 누군가를 도울 때 그들의 고통스런 얼굴 위로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남을 돕는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인터뷰 도중 랭걸 의원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북한 해법을 놓고 확연히 갈려 있다는 말을 듣자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기자가 “보수주의자”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통일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한국이 강해지려면 사회보장 등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경쟁 원리와 공존해야 한다”면서 “한국 국민들에게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찰스 랭걸 의원 약력

·1930년 미 뉴욕 할렘 출생,,고등학교 중퇴,·한국전쟁 참전,·뉴욕대,·세인트존스대 로스쿨,·뉴욕주 검사,·뉴욕주 의회 의원,·미 연방하원의원,·미 하원 세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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