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생선을 즐겨 먹지 않던 미국인들에게 사시미나 스시가 최고급 식문화로 자리 잡은 이면엔 1980년대 미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스시 붐’이 있다. 1970년대 말 단돈 100달러를 들고 생선 장사부터 시작해 미국 최대의 수산물 유통회사 트루월드 푸즈를 일으켜 세운 조슈아 다케시 야시로(八代武·61) 트루월드 그룹 사장은 미국 스시 붐 형성에 기여한 주역이다. 미 뉴저지주 록레이에 위치한 트루월드 푸즈에서 최근 야시로 사장을 만나 수산물을 미국인들의 선호 식품으로 변화시킨 성공 신화를 들어봤다.




―육류의 나라 미국에서 수산물 유통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유학 시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의 말씀을 듣고 시작하게 됐다. 문 총재는 1979년 미국에서 나를 비롯한 일본인 신도 50명과 미국인 신도 10명에게 한 사람당 100달러씩의 종잣돈을 줬다. 앞으로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해양자원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해양자원이 풍부한 미국에서 수산업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음식문화인 생선 먹는 방법을 전파하라고 했다.”

―그 당시엔 미국인들이 생선을 선호하지 않을 때였다. 어떤 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나.

“처음엔 우리 전체가 미니밴을 개조해서 집집마다 방문하며 생선을 팔았다. 나는 시카고에서 시작했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별로였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생선이 파는 도중에 꽁꽁 얼어버렸다. 결국 남은 생선은 술집에 가서 팔았다. 그래도 남는 것은 차이나 타운으로 가져가서 싼값에 모두 넘기는 식으로 했다. 미니밴을 타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초창기 방식은 지금도 일본에서 똑같이 하고 있다. 일본은 시골마다 노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시장을 자주 못 가니까 우리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면 꼭 생선을 사러 나온다. 우리는 단순히 생선만 파는 게 아니라 노인들의 안부를 전해주는 네트워킹 기능도 하고 있어 아주 평가가 좋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미국에선 이런 방식이 잘 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 돈 100달러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다른 두 명과 함께 미 동북부 도시인 보스턴으로 가서 관광객을 상대로 풍선, 그림 등을 팔거나 다른 일들을 해서 돈을 모았다. 그런 식으로 미니밴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았다. 당시 밴을 사려면 1만 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그렇게 구입한 밴으로 생선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바닷가재 등을 팔러다니는 우리를 ‘랍스터 맨’이라 불렀다.”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그 때는 모두 젊었고 혈기가 넘칠 때 였다. ‘무니’(Moonie, 통일교 신자)라고 온갖 구박을 다 받았지만 우리는 항상 웃고 다녔다. 우리는 착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했던 손님들도 우리를 찾게 됐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일본, 미국인들이다. 지금도 미국에 거주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우리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다시 사업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미니밴을 이용한 방문판매 방식이 잘 먹히지 않은 뒤엔 어떻게 했나.

“생선 가게를 열었다. 우리 60명은 미 50개 주에 골고루 배치됐으나 뉴욕이나 보스턴, 워싱턴DC 같은 대도시에 역점을 뒀다. 그러는 와중에 서서히 스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시 붐 덕분에 우리 사업이 번창했지만 우리도 미국 스시 붐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산물 유통회사로서 미국 수산회사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라선 비결은 무엇인가.

“미국 수산회사들의 관점에서는 광어는 광어일 뿐이다. 피멍이 든 광어도 광어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 레스토랑 사장들의 불평불만이 많았다. 우리는 그런 불만들을 경청하고 최고 품질의 생선만을 납품했다. 미국 회사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해냈다. 지금도 미국 내에서 선어(fresh fish)를 취급하는 전국 체인은 우리밖에 없다. 선어는 경영 자체가 어렵다. 사장이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고기를 사고, 저녁 늦게까지 챙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어 전국 체인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게 어려운 선어 관리라면, 트루월드는 어떻게 가능했나.

“우리들은 전부 사이가 좋기 때문에 가능하다.(웃음) 우리 회사엔 좋은 종업원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또 다른 경쟁력은 철저한 품질 관리다. 우리는 미 전역과 캐나다에 24개 지점을 갖고 있다. 이들 지점 전부가 미국의 엄격한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았고 A 등급 검정을 받았다. HACCP 인증과 A 등급 검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히 돈이 많이 든다. 전국적으로 HACCP 인증을 받은 회사는 우리 회사밖에 없다. 미 전역에서 8000곳 정도 되는 레스토랑에 우리 회사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그중엔 뉴욕의 노부 레스토랑 등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이 다수 포함돼 있다.”

◇미 수산유통회사인 트루월드 푸즈가 획득한 A 등급 검정 로고.

 

―노부 레스토랑 같은 최고급 식당엔 어떤 생선을 납품하나.

“우리는 다른 회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제품을 납품한다. 일본 도쿄의 스키치 시장에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고기들이 모인다. 우리는 거기에서 구입한 고기를 비행기로 손님들에게 바로 보낸다. 이런 고기들은 보통 가격보다 두 세배 더 받는다. 미국에서 유명한 일본 레스토랑들은 이 고기들을 가장 선호한다. 최근 우리 방식을 흉내내는 회사가 한두 곳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또 일본의 최고급 소고기인 ‘와규(和牛)’로 스시를 만들어서 미국에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양식하는 광어에게는 선인장 추출액을 먹이고 있다. 참치의 빨간 색깔이 변하지 않도록 참치 살에 산소를 넣은 ‘O2 마구로’도 개발했다. 레스토랑 외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나 대학, 항공사 등에 도시락을 납품하고 있다.”

―주요 생선 구입처는 어디인가.

“북미 지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태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사고 있다. 한국과는 6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와서 한국의 농수산품을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생선별로 참치는 부산과 중국 상하이에서 사서 보낸다. 보스턴은 세계적인 랍스터 산지다. 아귀도 보스턴과 캐나다에서 많이 잡힌다. 알래스카 코디액에 있는 계열사 ISA 공장에선 연어와 명태, 대구, 가자미 등을 가공한다. 알라배마에는 새우 가공 공장이 있다.”

―알라배마 해변은 올봄에 발생한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로 타격을 입은 곳이다. 피해는 없었는가.

“가뜩이나 멕시코만 새우가 동남아 새우에 밀리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원유 유출로 피해가 더 커졌다. 우리는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필요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줬다.”

―향후 사업 전망은 어떤가.

“우리는 그동안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로 살아남았다. 안전과 고품질, 정확한 배달, 적정한 가격 등으로 승부했다. 그런데 요즘 손님들은 무조건 싸면 좋다고 생각한다.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든다.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경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냐가 과제다. 장기적으로는 고기를 잡는 일에서 가공, 판매까지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는 문 총재의 비전을 현실화하고 싶다.”

―부인이 생선 요리를 잘하겠다.

“나도 잘한다.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한다. 미국에선 부부가 평등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요리해야 한다.(웃음)”

록레이=조남규 특파원

■ 조슈아 T 야시로 사장 약력

●일본 고베 출생. ●고교 졸업 후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유럽 여행(1969∼1972).

●샌프란시스코대 중퇴. ●1979년 미국 수산유통업 시작.

●트루월드 그룹 부사장, 트루월드 그룹 사장. ●미국인 부인 제니퍼 베이와 1남1녀.

지난 2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 8선 고지에 오른 스티븐 로스만 의원(민주·뉴저지).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론자로, 지난 7월 말 한미 FTA 비준에 앞서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보낸 110명의 하원 의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로스만 의원은 선거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한미 FTA 반대론자가 아니다”면서 “한미 간에 쟁점 사항들이 타결되면 한미 FTA의 의회 비준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 노조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로스만 의원이 한미 FTA에 관한 강성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은 지역구에 거주하는 한인 유권자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로스만 의원의 뉴저지 제9연방지역구에 등록된 한인 유권자는 1만5000여명에 이른다. 그는 “한미 FTA가 재미 한국동포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현안인지 미처 몰랐다”면서 “한인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나를 지지해준다면 한인사회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외교통인 게리 애커맨 의원(뉴욕).

15선 관록의 중진인 애커맨 의원도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한인 밀집지역인 뉴욕 플러싱 오픈 센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제임스 밀라노와 토론회를 가졌다. 연방 하원의원이 한인 사회의 토론회 초청에 응한 것은 역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도 다름 아닌 3만명에 달하는 지역구 한인 유권자들의 힘이었다. 그는 토론회에서 “한미 FTA 지지 성명에도 서명했고 의회 내에서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다 솔리스 미 노동장관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주디 추 의원(민주·캘리포니아).

중국계 여성 의원인 그 또한 로스만, 애커맨 의원과 마찬가지로 한인 밀집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더욱이 뉴욕 한인유권자센터(KAVC)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추 의원은 한인 사회가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후원한 의원이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당 내 한미 FTA 반대 진영의 선봉에 서 있다. 로스만, 애커맨 의원의 사례와 추 의원의 사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KAVC의 김동석 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재미 한인 사회의 정치력 결집의 차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만약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뉴욕과 같은 한인 사회의 풀뿌리 유권자 운동이 조직화돼 있었다면 추 의원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로스만 의원의 기자회견과 애커맨 의원의 토론회를 이끌어 낸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코리아 코커스 4명의 공동의장과 한덕수 주미대사. 왼쪽부터 제리 코넬리 (Gerry Connolly 민주. 버지니아 페어팩스) 에드 로이스 (Ed Royce 공화. 캘리포니아) 한덕수 주미대사. 로레타 산체스(Loretta sanchez 민주. LA) 댄 벌튼 (Dan Burton 공화. 인디애나)

미 의회는 2011년 1월 임기 2년의 112회기를 시작한다. 한미 양국의 FTA 추가 협의가 연내 타결된다고 해도 비준안은 새 의회에 제출된다. 새 의회는 미 국민들의 ‘반 워싱턴 정서’로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한국 정부 차원의 노력만으론 미 의회 설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미 워싱턴DC에 설립된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소(KEI)는 이달 초순부터 재미 동포들의 한미 FTA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강연회를 시작했다. 

강연회는 지난 8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시카고, 댈러스, 애틀랜타 등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강연회는 주미 한국대사관과 한국무역협회(KITA)가 공동으로 후원한다. 주미 대사관은 지난 9월 한미 FTA 홈페이지 내에 재미 동포들이 미국 정책 결정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액션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재미 동포들이 해당 지역구 연방 상·하원 의원에게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손쉽게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두가 좀 더 일찍 시작됐어야 하는 노력들이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재미동포들은 주(州) 상·하원 선거 등에 28명이 출사표를 던져 16명이 당선됐다. 출마자와 당선자 수 모두 역대 기록이다. 이를 토대로 재미동포 사회가 김창준 의원 이래 대가 끊긴 연방 하원의원, 나아가 주지사, 연방 상원의원을 배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의 재외국민 선거권 부여 정책이 이런 재미 동포들의 정치력 신장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의 사퇴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기자의 심경은 착잡했다.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 공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던 그가 정치 바람에 휩쓸려 임기도 마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미셸 리의 운명은 그의 교육 개혁 열정과 성과가 아닌 교육감 임명권을 쥐고 있는 워싱턴DC 시장 쟁탈전 결과에 좌우됐다. 미셸 리와 갈등 관계에 있던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DC 의회 의장이 민주당의 워싱턴DC 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미셸 리의 사퇴는 시간의 문제로 남게 됐다. 워싱턴DC는 민주당의 아성으로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미셸 리는 교육 개혁 추진 과정 내내 교사 노조, 시 의회 등과 충돌했다. 시 의회가 지난해 ‘서머 스쿨’ 예산을 줄이자, “학업 능력이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서머 스쿨은 폐지할 수 없다”면서 대신 교장과 교사 등 388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미셸 리를 만나 “교육 개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 노조나 시 의회,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모두가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 임무는 교사 노조도 시 의회도 아닌,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일부 어른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옳은 결정들을 내렸다. 누군가는 정치적 이유나 다른 미친 짓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노조나 시 의회는 나에게 화가 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미셸 리의 단호한 개혁 조치는 성과로 이어졌으나 동시에 반(反) 미셸 리 정서도 확산됐다. 경선에서 승리한 그레이 의장은 반 미셸 리 진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미셸 리의 사퇴는 미국에서도 교육감이라는 자리가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죽했으면 미셸 리가 경선 막바지에 자신을 발탁한 애드리언 펜티 현 시장 유세전에 동참했을까. 두 후보의 진흙탕 싸움 속에 뛰어든 미셸 리를 바라보면서, 민선 교육감 체제 출범 이후 교육 현장이 진보, 보수 진영의 전쟁터로 변한 한국의 현실이 겹쳐졌다. 정치 논리에 교육계가 휘둘리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셸 리는 지난 13일(현지 시간) 사퇴 결정을 내렸다.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교육 개혁에 헌신하고 싶다”고 말한 미셸 리였기에, 그의 사퇴 결정을 정치 논리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논리가 교육 현장에 개입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레이 의장은 미셸 리가 추구한 교육 개혁을 이어갈 수 있는 인사를 후임자로 선택했다. 후임자인 카이야 헨더슨 워싱턴DC 부교육감은 미셸 리가 교육개혁 전사를 양성하는 ‘새로운 교사 프로젝트’ 활동을 전개했을 당시 동고동락했던, 미셸 리의 ‘분신’과 같은 인물이다. 미셸 리가 워싱턴DC 교육감에 임명됐을 때, 함께 일하자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도 다름 아닌 헨더슨이었다. 미셸 리는 회견장에서 “교육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현재의 개혁가(자신)가 물러나는 일이라는 데 (나와 그레이는)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자신을 던지고 교육 개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치적 타협을 이끌어 낸 미셸 리는 이날 회견장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었다. 정적(政敵)이었던 펜티 시장의 교육 개혁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그레이 의장도 이날의 또 다른 주연이었다. 민주당 내의 권력 이동이라서 그런 정치적 타협이 가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는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이 없게 하자는 정책’(No Child Left Behind)을 펴며 미셸 리 교육 개혁을 뒷받침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 정책인 ‘정상을 향한 경주’(Race to the Top)는 미셸 리 교육 개혁의 연장선이다. 미국 교육 현장도 정치적 무풍 지대는 아니다. 그렇지만 학업성취도 향상과 교사 자질 개선 같은 교육 개혁을 놓고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한국이 먼저냐, 일본이 먼저냐.’

 축구 국가대표팀 순위 논쟁이 아니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를 우선시하고 있느냐는 논쟁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최근 연설 내용이 이런 논란에 불을 붙였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 8일 미 외교협회(CFR) 초청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 강화 노력과 관련, “우리(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가까운 동맹국들과의 유대를 재확인했다”면서 미국의 동맹국으로 한국을 일본보다 먼저 거론했다.

 그러자 일본 언론이 발끈했다.
 일본의 워싱턴 특파원들은 미 국무부 브리핑 자리에서 클린턴 장관이 일본을 한국보다 나중에 언급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금까지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을 언급할 때 정형적으로 일본, 한국, 호주의 순으로 언급해 왔으며 클린턴 장관도 그래왔으나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이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신뢰 관계가 흔들린 일본을 강격(降格:격을 내린 것)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DC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미국은 어떻게 한국을 바라보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한 방청객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린치핀’(linchpin)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린치핀’의 사전적 의미는 ①바퀴 멈추개, 바퀴의 비녀장 ②(비유) 요점, 요체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 단어를 미일동맹을 비유하면서 사용해왔다. 그런 ‘린치핀’이란 단어를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사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 표현했다.

KEI 토론회에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담당 석좌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와 잭 프리처드 KEI 소장,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고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6자회담 미국수석대표를 역임했던 크리스토퍼 힐 등 ‘친한(親韓) 인사’로 분류해도 무방한 인사들이 참석했으나 방청객의 질문엔 “그렇다”는 똑부러진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미 백악관과 국무부가 “우리는 한국과 일본 모두를 사랑한다”, “동맹국은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도 순으로 나열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자를 포함한 토론회 참석자들은 공식 답변의 행간에 담긴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전례가 드문 밀월 관계를 구가하고 있는 작금의 한미 관계가 그 자체로 답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취임 초 '강인하고, 직접적인(tough, direct)  대북 정책'을 표방하면서 "미국이 북한과 직접 거래하려는 것 아니냐"는 한국 정부의 우려를 자아냈으나 대북정책 집행 과정에서 한국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최근 미 정부가 6자회담 복원의 전제 조건으로 남북관계 진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북한을 중국을 통해 북미접촉->6자 예비회담->6자 본회담의 3단계 방안을 미측에 제시했으나 미국은 북미접촉 대신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은 유엔총회 등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직접 성명 등 한국 지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도 미국 민주당 내 일부 반발을 무릅쓰고 오는 11월 G20(주요20개국) 서울 정상회의 전에 양측이 접점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협상을 시작하라고 론 커크 미 USTR(무역대표부) 대표에게 지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급적 한미 FTA 같은 민감한 현안은 묻어두자는 입장이었다. 이 모두가 한미 관계가 공고하지 않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들이다.

KEI 토론회 참석자들이 굳이 꺼내놓지 않은 또 하나의 진실은 “언제든 미국의 동북아 중심이 일본으로 바뀔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4년 9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수락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 동맹국들을 거론하면서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고 그 탓에 한국인이 참수 테러까지 당했는데도 영국과 일본, 호주는 물론이고 덴마크나 네덜란드, 엘살바도르, 폴란드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누락됐다. 백악관이 공식 사과하긴 했으나 불편했던 한미 관계가 반영된 사례였다. 당시 미일은 밀월 관계였다. 부시는 미국을 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자신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청하고 엘비스 프레슬리 팬인 고이즈미와 함께 프레슬리 생가를 찾았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부시는 참모들에게 “내 친구 고이즈미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고이즈미 정부를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의 정권이 교체되고 지도자가 바뀌면서 기존의 역학 관계는 재편됐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추구한 일본 민주당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파열음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 클린턴 장관의 CFR 언급을 계기로 “왜 일본을 한국보다 나중에 언급했느냐”는 유치한 논란이 전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몇 년 만에 역전된 미일, 한미 관계의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CFR 발언 논란은 그 어떤 동맹 관계도 공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웅변한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미국 남북전쟁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싸움터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147년 전엔 북군과 남군이 미 연방의 진로를 놓고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지만 지금은 게티스버그 국립공원 인근에 카지노를 설립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게티스버그 주민이자 개발업자인 데이비드 르뱅이 얼마 전 게티스버그 국립공원 인근 호텔에 카지노 위락 단지를 조성하겠다며 펜실베이니아주에 카지노 영업 허가권을 신청하면서 비롯됐다. 게티스버그 주민들은 두 편으로 갈려 있다. 한편은 르뱅의 지역경제 활성화 주장에 동조한다. 르뱅은 카지노 유치로 게티스버그 공원이 속한 애덤스 카운티에 연 6600만달러 상당의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고 1000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다른 한편은 카지노 설립이 남북전쟁 전사자들을 모독하고 게티스버그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7일(현지 시간) 찾은 게티스버그에서는 카지노 설립을 둘러싼 긴장감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게티스버그 공원 근처에는 ‘No Casino’(카지노 반대), ‘Pro Casino’(카지노 찬성)라고 적힌 표지판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공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태미 휴스는 “찬반 여론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어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친구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갈려 있다”고 말했다. 찬성론자인 주민 제이 퍼디는 “남북전쟁 시대에도 군인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도박을 했다”면서 “그들은 영웅일 뿐 성인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게티스버그 칼리지 교수를 지낸 데이비드 크라우너는 “도박은 게티스 버그의 위엄이나 경건함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론을 폈다.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카지노 설립 관련 공청회에서도 찬반 양측은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영화 ‘게티스버그’를 감독한 로널드 맥스웰은 “폴란드는 카틴 숲 학살 현장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근처에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다”면서 “게티스버그에 카지노를 설립하겠다는 발상은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카지노를 설립하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 전역의 반대론자들은 3만명의 청원을 받아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재정난에 시달리는 애덤스 카운티는 카지노 설립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지역 내 비영리그룹인 ‘게티스버그 보존협회’도 최근 이사회를 열어 카지노 설립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게티스버그 전투가 끝나고 격전지를 찾아 남군과 북국 전사자들을 추모한 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연설을 했다. 1863년 여름, 북군에 승리를 안긴 게티스버그 전투가 이번엔 어느 쪽의 승리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게티스버그=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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