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살아서 한국을 다시 찾고 싶구나.”

지난 19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북쪽에 위치한 ‘참전용사 마을’(Armed Forces Retirement Home).


                                                 해나 킴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맞아 기자와 함께 참전용사 마을을 찾은 해나 킴(한국명 김한나)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웬들 쉐핀(89)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 인연의 끈은 한국전쟁이었다. 쉐핀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참전해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2009년. 해나 킴은 쉐핀과 같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미 의회를 움직였다. 의회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를 통과시키기에 앞서 그는 연방하원 435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인연이었다. 지난해 한국전쟁 60주년 행사장에서 해나 킴을 봤다는 쉐핀은 그가 들어서자 반색하며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쉐핀은 “내 아들도 주한미군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했다”면서 “며느리도 한국 여성이라서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성은 김씨였는데 결혼한 뒤에 킴벌리가 됐다”면서 너털웃음을 했다. 휴게실에 모였던 다른 참전용사들도 쉐핀의 너스레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워싱턴 DC 참전용사 마을 입구. 한국전 참전용사 125명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650명의 퇴역 군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중 125명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는 “참전용사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이 83세”라면서 “해가 갈수록 주민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마을은 조지 워싱턴대 병원 등과 계약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역전의 용사들도 세월의 흐름만은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400명을 웃돌던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수도 최근 들어 급감 추세라고 한다.

6·25전쟁 기념일이 임박하면 참전용사 마을은 한국전쟁이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한국전쟁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엔 온통 한국전 기념 행사와 공연 얘기로 만발했다. 당시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개최된 리틀 엔젤스 예술단 공연이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왓킨스는 “미군이 세계 여러 곳으로 파병됐지만 한국처럼 우리 같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나도 한국전 참전용사였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웃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전 참전용사 월터 킷슨은 “우리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정중하게 대접받았다”면서 “우리의 영혼을 울린 방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초청을 받은 킷슨 등 6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한동안 주민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참전용사 마을은 1851년 노병과 상이 군인들을 위한 보호 시설로 시작됐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별장이 눈에 띈다.
 

                                                                                                                        링컨 커티지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책상

‘사병들의 숙소’로 불렸던 이 건물은 링컨 대통령이 즐겨 찾으면서 ‘링컨 커티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병들의 안식처로 시작된 유래에 따라 지금도 장교들은 마을 주민이 될 수 없다. 참전용사 배우자도 입소 자격이 없어 통상 배우자와 사별한 참전용사들이 주민이 된다. 그래서일까. 참전용사 마을엔 노년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나 킴이 작별 인사를 하자 쉐핀은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해질 무렵 참전용사 마을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마음도 무거웠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참전용사 마을 디렉터인 데이비드 왓킨스

 



 

지난 5월22일(현지 시간)부터 사흘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에이팩) 연례총회를 취재하면서 유대계 미국인들의 저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이팩은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에이팩 연례총회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 연방 상·하원 지도부 등 미국의 수뇌부가 총출동한다. 미국 대통령의 에이팩 총회 참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재임 시절 에이팩 총회에서 ‘충성 서약’을 했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이스라엘 지지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곳도 에이팩이다.

 

 

 

 

 

 

                                                                                              <에이팩 반대 집회>


23일 만찬에는 350명이 넘는 연방 의원들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의원들은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이팩 개막식 연설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격앙시킨 ‘1967년 국경선’ 제안에 대해 해명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답보 상태인 중동 평화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으로 얻은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오해가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유엔 차원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이스라엘 편에 섰다. 미 국방부는 에이팩 총회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방어 구상 기술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중국에 관련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 속에서 미국의 기술 지원이 중단된 지 6년 만이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이란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막기 위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들 사안은 모두 에이팩이 올해 로비 목표로 선정한 것들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에이팩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에이팩의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력 때문이다.

연례총회에 참석한 1만여명의 회원들은 미 전역에서 선발된 유대계 미국인 대표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에이팩 조직은 미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결성돼 있으며 회원들이 자기 지역구 의원들을 움직인다”고 전했다. 미 언론은 7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조지 맥거번의 낙선을 에이팩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인용하곤 한다. 맥거번은 당시 F-15 전투기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판매하겠다는 지미 카터 미 행정부 조치에 동조했다가 에이팩의 ‘살생부’에 올랐다. 공화당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 찰스 퍼시는 팔레스타인과 협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에이팩이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영리했다.

올 연례총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격적인 ‘1967년 국경선’ 제안으로 미·이스라엘 관계가 서먹해진 가운데 개막됐으나 에이팩은 “우리는 유대인이기에 앞서 미국 시민”이라는 기조를 견지했다. 김 소장은 “에이팩은 총회 기간 내내 이스라엘을 편들기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이스라엘 관계가 악화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연방 하원의 유대계 의원이 민주당에는 30명 넘게 포진한 데 반해 공화당에는 에릭 켄터 원내대표가 유일하다. 에이팩이 유대계 후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공화당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원한 결과다.

에이팩은 50년대 초반 유대계 미국인과 의회 인사들의 친목 단체로 출발했다.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보니 초창기엔 갈등도 없지 않았다. 난관이 적지 않았지만 에이팩 리더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유대계 미국인들의 단결이 지금의 에이팩을 만들어냈다.

재미 한인 동포들의 수도 꾸준히 늘어 600만 미국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미 한인들의 영향력이 재미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은 아니다. 김 소장은 “재미 동포들이 에이팩과 같은 행사를 개최했을 때, 자비로 행사에 참석할 동포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내 한인과 유대인의 차이는 유대인들은 에이팩과 같은 영향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에 거주하는 250만 한인 동포를 명목상
대표하는 단체이자 미국 내 168개 한인회의 전·현직 회장 2천3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회장선거가 파행 속에 막을 내렸다.
지난 5월28일(현지시간)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 선거가 열린 시카고 북서교외
의 힐튼호텔은 입구에서부터 미국 각지에서 달려온 400여 명의 한인회장단으로 북적
거렸다.
이번 선거에는 애리조나주 한인회장 출신의 김재권(64) 미주총연 이사장과 조지
아주 오거스타 한인회장 출신의 유진철(57) 총연 부회장이 출마해 열띤 경쟁을 벌였
으며 김 후보가 임기 2년의 24대 회장에 당선됐다.
내년 4월 처음 도입되는 재외국민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때문
인지 일부에서는 김 후보를 민주당 후원을 받는 호남 출신으로, 유 후보를 한나라당
후원을 받는 영남 출신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두 후보 진영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보였다. 양측 모두 "오랜 시간 미주총연에
서 함께 일해와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도무지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미주총연 행사장 바로 옆 홀에서는 마침 한 유대인(Jewish) 가족이 주최한
'바르 미쯔바(Bar Mitzvah)' 파티가 열렸다. 회당에서 유대교 정통 의식에 따라 만
13세 생일을 기념하는 성인식을 거행한 후 자리를 옮겨 진행하는 이 파티에는 100여
명이 참석해 옆에서 치러지는 한인들의 선거 분위기를 지켜봤다.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한인들과 자주 비교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 잘하는 대표적인 민족이다.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큰 영
향력을 행사하며 살 수 있는 건 그들이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하기 때
문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미주총연 행사는 투표 결과 발표 이후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선거관리위원장이 김 후보의 당선을 선언하고 당선증을 전달한 직후
유 후보 지지자들이 행사장으로 뛰어들어와 "선거에 부정이 개입됐다"며 선거 무효
를 외쳤다.
이들은 "부재자 투표 발송지와 유권자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우편 봉투가 대량
발견됐고 김 후보 지지자의 중복 투표 증거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당선자 측은 "유 후보 측이 결과에 불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
다.
이로 인해 참석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행사장과 로비는 물론 호텔 1층이 모
두 술렁거렸다.
투표와 개표 작업이 진행된 별도의 방 입구에서는 언성 높인 항의가 제기되고
소란이 일면서 급기야 호텔 측 신고로 지역 경찰들이 두 차례나 출동하는 사태가 발
생했다.
이를 놓고 유 후보 진영의 한 회원은 "FBI(미 연방수사국)가 조사를 나왔다"는
웃지 못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경찰에 직접 확인한 결과 "우리는 단지 싸움을 말리
러 나왔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시카고 노스브룩 힐튼호텔 로비에서 '싸움하는' 일부 한인들 사이로 바르 미쯔
바 파티를 즐기는 유대인 아이들이 걸어 다녀 한눈으로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
2년 만에 열린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선거는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그
렇게 끝이 났다. 행사 주최 측은 파행에 대한 공식 설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일
부 참석자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차례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참석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
다.
유 후보 측은 "선관위가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을 경우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
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한인들의 화합을 명분으로 존재하는 비영리단체 한인회
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잦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1956년에 미국으로 건나와 뉴욕 롱아일랜드 한인회 2대 회장을 지낸 하세종(77
) 씨는 "앞으로 한국인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서 "미주총연은 한인 2, 3
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인 파워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icagorho@yna.co.kr


미국 정치권이 2012년 대선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재선 도전을 선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재선 캠프를 풀가동하고 있다. 최근 당 주자들의 교통정리가 이뤄지면서 공화당 진영의 대선 경선 구도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슈화하며 백악관과 민주당을 상대로 전초전을 벌이고 있다. 1971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이래 40년 동안 미국 정치 현장을 지켜온 찰스 랭걸 의원(민주·뉴욕)을 19일(현지 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만나 미국 정치를 주제로 환담했다.


찰스 랭걸 의원과 필자


-당신은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나를 진보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 그 질문엔 답변할 수 없다. 무엇이 진보주의인가?”

-진보주의자는 현 상황을 지속시키기보다는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도 바꾸길 원한다. 그들도 미국의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사회보장 제도를 나쁜 방향으로 뜯어고치려 한다. 문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누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느냐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누구도 항상 옳거나, 그를 수는 없다. 당신이 내 견해를 듣고싶다면 구체적으로 현안을 특정해서 물어야 한다.”

-당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몇몇 이슈에선 진보주의자다. 하지만 나는 (대다수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낙태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이나 제도의 희생자들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아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국가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들을 진보 진영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변하고 있다. 그는 희망과 비전, 삶의 질 향상을 설파한다. 하지만 현재 보수진영에선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없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한다고 보느냐. 수 많은 미국인이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실상 모든 정치인들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했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국민들이 공화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유권자들은 현역 정치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내쫓아 버렸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비는 쪼들리는데 자녀들마저 대학에서 중퇴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해보라. 꿈이 사라진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폭발했다.”

 

-내년 선거 전에 유권자들의 분노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나.

“원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권자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명과 관계없다. 중간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공화당이 지난해 석권한 지역들은 그보다 앞선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차지했던 곳이다. 시소게임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보나.

“누가 대항마로 나서느냐가 관건이나 재선 승리를 낙관한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공정한 납세 정책을 바란다고 믿는다.(공화당은 부유층 감세 지속을, 민주당은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 감세조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보장을 포함한 사회보장 정책을 추진하길 바라고 석유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로 인해 멕시코만 연안이 기름띠로 뒤덮히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공화당 주지사가 배출된 일부 주에서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채택되고 있다)은 헌법적 권리 이상의 천부적 권리라는 것이 대다수 미국인의 판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들(공화당)은 나처럼 믿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오바마 재선을 낙관하는 이유다.”

-최근 들어 미국 정치의 당파성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초당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날 선 대립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정치 갈등이 위험 수위다. 비정상적이다. 문제는 정치 갈등의 수위다. 일정 수준의 정치 갈등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정부의 운영 방식을 결정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보, 보수 진영의 치열한 갈등은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정치 갈등은 해롭지 않다.”

 

찰스 랭걸 의원이 19일(현지시간)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사무실에서 한국전쟁 50주년 기념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랭걸 의원 뒤로 사진을 찍는 필자의 모습이 비친다.

-한국은 민주주의 운영 측면에서 결함이 노정되고 있다. 국회의사당 내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할 정도다. 한국 정치권에 해주고싶은 말은 없는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긴장을 푸세요.(웃음). 한국에서 이뤄지는 어떤 일이든 한국인들이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

-미 연방하원 선거에서 내리 21선(미 연방하원의원 임기는 2년)을 기록했다. 오랜 의정 생활에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 같다.

“지난 세월 의정 활동을 하면서 내가 정치적으로 직면했던 많은 문제는 대부분 가치, 철학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보장받아야 한다. 미국인이라면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론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은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시절에서 흑인 대통령이 배출된 시대로 진보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농담조로) 처음으로 의원 선서할 때였다.(웃음) 내가 추진한 법안들이 통과되는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주의)를 철폐시키기 위해 남아공 정부와 남아공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에 징벌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주도했다. 결국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다. 큰 보람을 느꼈다. 아이티 군부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민권법은 거리에서 울부짖던 이들의 인권을 법제화한 것이다. 내 법안들이 가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당신도 누군가를 도울 때 그들의 고통스런 얼굴 위로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남을 돕는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인터뷰 도중 랭걸 의원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북한 해법을 놓고 확연히 갈려 있다는 말을 듣자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기자가 “보수주의자”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통일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한국이 강해지려면 사회보장 등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경쟁 원리와 공존해야 한다”면서 “한국 국민들에게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찰스 랭걸 의원 약력

·1930년 미 뉴욕 할렘 출생,,고등학교 중퇴,·한국전쟁 참전,·뉴욕대,·세인트존스대 로스쿨,·뉴욕주 검사,·뉴욕주 의회 의원,·미 연방하원의원,·미 하원 세입위원장

 


영어·젊은 리더십 ‘파워’… ‘주변인’서 美주류 편입 이끈다

한인회 1.5세대 장악… 조직 ‘대혁신’
美연방·주정부, 의회 등과 교류 강화
日위안부안 통과·한미 운전면허협약 등 동포 권익·모국 국익 증진 활동에 앞장

재미 동포사회에 ‘1.5세 시대’가 개막됐다.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 문화 접경에 존재하며 어느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세대로 인식됐다. ‘주변인’으로 불렸던 그들이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재미 한인 사회와 미 주류 사회를 잇는 ‘가교’로 거듭나고 있다.




1.5세 바람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일원에서 불기 시작했다. 워싱턴 한인연합회(최정범 회장)와 버지니아 한인회(홍일송 회장)는 2011년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화한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1.5세 회장 체제를 출범시키고 한인회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 한인회는 임원진에도 1.5세와 2세 전문가 그룹을 대거 포진시키며 과거 성공한 이민 1세들의 ‘사랑방’ 수준에 머물렀던 한인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영어 구사가 자유로운 1.5세가 한인회 리더십을 장악하면서 미 주류 사회와의 소통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은 미 연방 정부와 의회, 버지니아·메릴랜드 주 정부와 의회, 지역 상공회의소 등과의 교류를 강화하며 재미 한인 사회의 권익 보호와 한국의 국익 증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한인 밀집 지역을 지역구로 둔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연방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타운홀 미팅 정례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상공회의소와 한인 상공인들을 이어주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버지니아한인회는 오는 6월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미 전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하는 보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 모두가 1.5세 한인회 리더십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고 있다.

재미 한인회의 변화는 재미 동포 사회의 양적, 질적 성장을 반영한 새로운 현상이다.
2007년 미 연방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최근 이뤄진 버지니아·메릴랜드주의 한·미 운전면허 상호인증 협약 체결 등은 한국 정부의 노력과 재미 한인 사회의 저력이 결합된 모범 사례들이다. 동포사회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축적된 한인 사회의 역량이 한인회의 1.5세 시대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5세대란=연령에 관계없이 청소년기를 전후해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세대를 통칭하는 용어. 이들을 성인이 돼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나 미국에서 태어난 2세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1980년대 미국 대학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된장세대(이민 1세)·버터세대(이민 2세), 1.5세가 ‘화합 가교’

분열과 갈등 벗고 하나되는 美 한인사회
“모래알 한인회 이대론 안된다”… 따로 놀던 신구세대 화합 이끌어
美 주류사회서도 눈부신 활약… 코메리칸 지위 향상의 ‘견인차’


홍일송 미국 버지니아 한인회장은 1978년 미국에 왔다.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이른바 ‘1.5세’다. 85년 메릴랜드대 재학시절 워싱턴 지역 대학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 그는 유세장에서 “1.5세가 회장이 되지 않으면 학생회가 죽는다. 이제 재미 한인학생회에서는 1.5세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 이전 학생회장은 모두 이민 1세였다.



홍씨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대학 졸업 후 버지니아주에 정착한 그는 버지니아 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20여년 전 총학생회장 출마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를 다시 들고 나왔다.

홍 회장은 “당시 재미 한인 학생들은 1세와 2세, 1.5세로 세 부류로 확연히 갈렸다. 섞이지 않고 따로 놀았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인회도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지니아 한인회장에 취임한 뒤 임원진을 모두 물갈이했다.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린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그동안 한인회와 단절하고 살아왔다. 평균 연령은 40대.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의에선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한인회 페이스북도 만들었다.

그동안 재미 한인회는 이민 1세들의 독무대였다. 한인회장 자리는 성공한 1세대들의 ‘감투’로 전락했다. 한인회는 미 주류사회와 담을 쌓은 채 한인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 여러 개의 한인회가 간판을 내걸고 밥그릇 싸움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2세)들은 한국을 모르는 ‘버터 세대’로 성장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1.5세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연말 치러진 워싱턴 일원의 한인회 회장 선거에서 ‘한인회 개혁’을 기치로 들고 나섰다. 동포사회는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미 주류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홍 후보를 선택했다.

워싱턴한인연합회도 최정범 연합회장 취임과 동시에 한인회 쇄신작업에 착수했다. 최 회장은 자신과 함께 일할 부회장단에 1.5세들을 대거 등용했다.

1.5세들은 한인회를 넘어 미 전역에서 주역으로 뛰고 있다. 미 정치권의 대표주자는 78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마크 김 버지니아주 의회 의원(민주). 그는 버지니아주 의회 역사상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주 의원이 됐으며, 올해 민주당의 ‘떠오르는 정치인’ 10명에 선정됐다.

사업가로는 초고속 교환기(ATM) 통신시스템을 개발한 벤처기업 유리시스템 설립자인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 태권도 사범 출신으로 반도체공장 오염방지 시스템 전문회사 라이트하우스를 창립해 굴지의 회사로 키운 김태연씨 등이 있다.

미 정치인들의 사부로 통하는 이준구(준 리) 태권도사범의 아들 지미 리 버지니아주 상무부 차관도 1.5세다.

홍 회장은 “이민 첫세대는 자식들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를 만들었지만 2세들은 한인사회를 등지고 살고 있다”면서 “미국 사회를 잘 알면서도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1.5세들이 연령과 세대로 분열된 한인사회를 통합하는 데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과 타운 홀 미팅 갖고… 한·미 상공인 모임 열고

워싱턴한인회·지역상의 정례모임
한인정치인 키우기도 발벗고 나서

2011년 3월3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 위치한 워싱턴 한인연합회 사무실은 한·미 상공인들로 북적거렸다.

애넌데일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이 지역 한·미 상공인들 모임이었다. 한인 밀집지역인 애넌데일이지만 지금껏 애넌데일 상공회의소 모임에 한인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한·미 상공인들이 공식적으로 무릎을 맞대고 지역 현안을 논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모임은 지난달 워싱턴 한인회 회장단과 애넌데일 상공회의소의 상견례 자리에서 양측이 애넌데일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워싱턴한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한·미 상공인 모임


앞서 이뤄진 최정범 회장과의 인터뷰는 사무실을 찾아온 미국인들에 의해 여러 번 중단됐다.

최 회장은 사무실을 찾은 제리 코널리 미 연방 하원의원의 보좌관과 최근 미 법원에서 불법 체류 등의 사유로 추방 판결을 받은 재미 한인 2명의 구명 문제를 장시간 논의했다. 코널리 의원을 통해 미 행정부 측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선거구에 한인 거주 지역이 포함된 의원들과는 정례적인 타운 홀 미팅(공청회)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한인들의 몰표를 얻어 박빙으로 승리한 코널리 의원은 한인회의 요청을 수용해 한인들과 6개월에 한 번씩 타운 홀 미팅을 갖기로 약속했다. 지난달 한인회 주최로 열린 타운홀 미팅에는 버지니아주 상·하원 원내총무를 비롯한 양당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재미 한인회와 미국 주류 사회의 소통이 강화되고 있다. 한인회가 한인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 주류 사회와의 접촉 면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주류 사회에 뿌리를 내린 인사들이 한인회 리더십을 구성하면서 달라진 변화상이다. 한인회 사무실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한인들의 ‘사랑방’ 역할에 국한됐던 사무실은 미 주류 사회와의 소통 공간으로 변모했다.

재미 한인들의 주류 사회 진출도 한인회의 역점  목표 중 하나다. 워싱턴 한인회는 올 연말 선거에서 마크 김 버지니아주 의회 의원이 재선 고지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마크 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황원균 전 버지니아한인회장은 “후원금 10만 달러 모금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면서 “10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면 민주, 공화 어느 당에서도 도전자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사회, 中·베트남보다 위상 낮아…우리도 10년후 보고 美주지사 배출해야”


 

“우리도 10년 내다보고 미국 주지사 만들어내야 한다.”

최정범 워싱턴한인연합회장(미국명 스티브 최·사진)은 “재미 한인 사회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 캄보디아 커뮤니티보다 미 주류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1.5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4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 고등학생 시절 부모가 운영하던 세탁소에 화재가 발생, 가업이 기울게 되자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여행사를 차렸으나 97년 외환위기 사태 당시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좌절을 겪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재기에 성공한 뒤 한인회 개혁 기치를 치켜든 최 회장을 만나봤다.

―워싱턴 한인연합회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1.5세 출신 회장이 됐다. 1.5세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미국에 온 사람들이다. 그래야 정확하게 한국말 할 수 있고 영어도 할 수 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식의 한국적 가치 지향도 있다. 한국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완전하게 미국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 중2 이후에 미국에 오면 생각이 한국 쪽에 가깝다. 1.7세, 1.8세로 부를 수 있겠다. 초등학교 5학년 이전에 오면 미국에 더 동화된다.”

―1.5세 출신 첫 한인회장의 소명이 무엇이라고 보나.

“재미 한인들에게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어떻게 미국 땅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 진출 얘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가 주류사회가 됐다.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게 맞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때다. 이민 2세들의 나이가 40대가 됐다. 이들이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회장 자신이 기존의 이민 1세들과 달라야 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2세와도 달라야 한다. 1.5세로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

―미국 내에서 한인 사회가 베트남, 캄보디아 커뮤니티보다 위상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가 치러질 때 중국, 베트남계는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준다. 한국 사람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인적으로 민다. 민주, 공화당 지지 갈려 있다. 후보 쪽에서 한인 사회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주지사 당선자가 베트남, 중국계 장관은 발탁해도 한국계는 신경쓰지 않는다. 버지니아주에 한국계 장관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기자는 2009년 9월 본 칼럼에서 한·일 역사 갈등과 관련된 미국 행정부의 수수방관적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미국 행정부와 싱크탱크의 동북아 전문가라는 인사들의 일본 편향 행태를 지적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미래지향적인 동북아 정책을 촉구하는 취지의 칼럼이었다.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지원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대표를 만나고 온 직후였다. 코틀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지일파 관료들과 싱크탱크의 동북아 전문가들이 위안부 결의안에 반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분개했다. 거론된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전문가들 중 한 사람은 현재 국무부의 요직을 맡고 있다. 그 즈음에 미국의 유력 일간지라는 뉴욕타임스(NYT)가 한국 관련 기사에서 동해 대신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한 지도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독도 광고

오바마 정부는 여전히 한·일 역사갈등에 관한 한, 오불관언(吾不關焉)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겉으로는 한·일 갈등의 당사자 해결 주의를 내걸지만,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 ‘린치핀’(요체)인 한국과 ‘코너스톤’(주춧돌)인 일본 사이에 공연히 끼어들기 싫다는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미국의 이런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자세다. 일본의 일방적 도발로 한·일 역사 갈등이 돌출될 때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은 백악관과 국무부를 찾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이유에 대해 주미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불개입 정책 때문에 한국 정부의 입장 전달 자체가 실익이 없다는 취지로 들렸다. 과연 그런가.

최근 일본은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 교과서 출판을 허가했다. 일본 외무성은 2011년 외교청서(우리나라 외교백서에 해당)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외교청서가 발간되면 일본 외무성은 각국 해외공관에 독도와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 논리를 홍보하도록 지시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집요하고도 지속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기정사실화’한다. 외교에서 자국의 입장을 상대국과 이해 관련국에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재확인하는 것은 설명과 확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국 입장을 상대국과의 외교 기록에 반복적으로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자국 입장을 견지하고 국익을 지키는 기본적 외교 행위다.

한·일 역사 갈등 현안에서 미국은 핵심 이해 관련국이다. 미국을 향해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망동을 엄중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정식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선례가 되어 향후 독도 사태가 더 악화돼도 미국에 이런 입장을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본은 지금의 행태로 미뤄봤을 때, 한국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를 자국의 입장이 옳다는 기정사실화의 근거로 악용할 것이 확실하다.

미국 국무부 등 정부 기관의 모든 한반도 지도에는 동해가 ‘Sea of Japan’으로 표기돼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이를 근거로 일본해를 고집하고 있다. 국무부 홈페이지는 독도를 ‘일본해에 위치한 리앙크루 암석’으로 표기한다. 리앙크루는 19세기 중반 동해에 진출한 프랑스 포경선 이름으로 선원들은 해도에 나타나지 않은 독도를 리앙크루 암석으로 명명했다. 한·일 역사 갈등에는 오불관언이라는 미국이 정부 기관 홈페이지에는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 편향적 표기를 고수하는 셈이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씩 쌓이면 억지 주장이 기정사실로 둔갑한다. 외교에서 자국 입장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웅변하는 사례이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궤변이 먹히지 않을지라도 오랜 기간 그 주장이 반복되면 미국 정부나 미 국민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 미국 내에서 ‘Sea of Japan’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과정이 그랬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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