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젊은 리더십 ‘파워’… ‘주변인’서 美주류 편입 이끈다

한인회 1.5세대 장악… 조직 ‘대혁신’
美연방·주정부, 의회 등과 교류 강화
日위안부안 통과·한미 운전면허협약 등 동포 권익·모국 국익 증진 활동에 앞장

재미 동포사회에 ‘1.5세 시대’가 개막됐다.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 문화 접경에 존재하며 어느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세대로 인식됐다. ‘주변인’으로 불렸던 그들이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재미 한인 사회와 미 주류 사회를 잇는 ‘가교’로 거듭나고 있다.




1.5세 바람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일원에서 불기 시작했다. 워싱턴 한인연합회(최정범 회장)와 버지니아 한인회(홍일송 회장)는 2011년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화한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1.5세 회장 체제를 출범시키고 한인회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 한인회는 임원진에도 1.5세와 2세 전문가 그룹을 대거 포진시키며 과거 성공한 이민 1세들의 ‘사랑방’ 수준에 머물렀던 한인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영어 구사가 자유로운 1.5세가 한인회 리더십을 장악하면서 미 주류 사회와의 소통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은 미 연방 정부와 의회, 버지니아·메릴랜드 주 정부와 의회, 지역 상공회의소 등과의 교류를 강화하며 재미 한인 사회의 권익 보호와 한국의 국익 증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한인 밀집 지역을 지역구로 둔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연방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타운홀 미팅 정례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상공회의소와 한인 상공인들을 이어주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버지니아한인회는 오는 6월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미 전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하는 보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 모두가 1.5세 한인회 리더십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고 있다.

재미 한인회의 변화는 재미 동포 사회의 양적, 질적 성장을 반영한 새로운 현상이다.
2007년 미 연방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최근 이뤄진 버지니아·메릴랜드주의 한·미 운전면허 상호인증 협약 체결 등은 한국 정부의 노력과 재미 한인 사회의 저력이 결합된 모범 사례들이다. 동포사회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축적된 한인 사회의 역량이 한인회의 1.5세 시대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5세대란=연령에 관계없이 청소년기를 전후해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세대를 통칭하는 용어. 이들을 성인이 돼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나 미국에서 태어난 2세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1980년대 미국 대학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된장세대(이민 1세)·버터세대(이민 2세), 1.5세가 ‘화합 가교’

분열과 갈등 벗고 하나되는 美 한인사회
“모래알 한인회 이대론 안된다”… 따로 놀던 신구세대 화합 이끌어
美 주류사회서도 눈부신 활약… 코메리칸 지위 향상의 ‘견인차’


홍일송 미국 버지니아 한인회장은 1978년 미국에 왔다.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이른바 ‘1.5세’다. 85년 메릴랜드대 재학시절 워싱턴 지역 대학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 그는 유세장에서 “1.5세가 회장이 되지 않으면 학생회가 죽는다. 이제 재미 한인학생회에서는 1.5세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 이전 학생회장은 모두 이민 1세였다.



홍씨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대학 졸업 후 버지니아주에 정착한 그는 버지니아 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20여년 전 총학생회장 출마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를 다시 들고 나왔다.

홍 회장은 “당시 재미 한인 학생들은 1세와 2세, 1.5세로 세 부류로 확연히 갈렸다. 섞이지 않고 따로 놀았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인회도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지니아 한인회장에 취임한 뒤 임원진을 모두 물갈이했다.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린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그동안 한인회와 단절하고 살아왔다. 평균 연령은 40대.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의에선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한인회 페이스북도 만들었다.

그동안 재미 한인회는 이민 1세들의 독무대였다. 한인회장 자리는 성공한 1세대들의 ‘감투’로 전락했다. 한인회는 미 주류사회와 담을 쌓은 채 한인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 여러 개의 한인회가 간판을 내걸고 밥그릇 싸움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2세)들은 한국을 모르는 ‘버터 세대’로 성장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1.5세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연말 치러진 워싱턴 일원의 한인회 회장 선거에서 ‘한인회 개혁’을 기치로 들고 나섰다. 동포사회는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미 주류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홍 후보를 선택했다.

워싱턴한인연합회도 최정범 연합회장 취임과 동시에 한인회 쇄신작업에 착수했다. 최 회장은 자신과 함께 일할 부회장단에 1.5세들을 대거 등용했다.

1.5세들은 한인회를 넘어 미 전역에서 주역으로 뛰고 있다. 미 정치권의 대표주자는 78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마크 김 버지니아주 의회 의원(민주). 그는 버지니아주 의회 역사상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주 의원이 됐으며, 올해 민주당의 ‘떠오르는 정치인’ 10명에 선정됐다.

사업가로는 초고속 교환기(ATM) 통신시스템을 개발한 벤처기업 유리시스템 설립자인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 태권도 사범 출신으로 반도체공장 오염방지 시스템 전문회사 라이트하우스를 창립해 굴지의 회사로 키운 김태연씨 등이 있다.

미 정치인들의 사부로 통하는 이준구(준 리) 태권도사범의 아들 지미 리 버지니아주 상무부 차관도 1.5세다.

홍 회장은 “이민 첫세대는 자식들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를 만들었지만 2세들은 한인사회를 등지고 살고 있다”면서 “미국 사회를 잘 알면서도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1.5세들이 연령과 세대로 분열된 한인사회를 통합하는 데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과 타운 홀 미팅 갖고… 한·미 상공인 모임 열고

워싱턴한인회·지역상의 정례모임
한인정치인 키우기도 발벗고 나서

2011년 3월3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 위치한 워싱턴 한인연합회 사무실은 한·미 상공인들로 북적거렸다.

애넌데일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이 지역 한·미 상공인들 모임이었다. 한인 밀집지역인 애넌데일이지만 지금껏 애넌데일 상공회의소 모임에 한인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한·미 상공인들이 공식적으로 무릎을 맞대고 지역 현안을 논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모임은 지난달 워싱턴 한인회 회장단과 애넌데일 상공회의소의 상견례 자리에서 양측이 애넌데일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워싱턴한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한·미 상공인 모임


앞서 이뤄진 최정범 회장과의 인터뷰는 사무실을 찾아온 미국인들에 의해 여러 번 중단됐다.

최 회장은 사무실을 찾은 제리 코널리 미 연방 하원의원의 보좌관과 최근 미 법원에서 불법 체류 등의 사유로 추방 판결을 받은 재미 한인 2명의 구명 문제를 장시간 논의했다. 코널리 의원을 통해 미 행정부 측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선거구에 한인 거주 지역이 포함된 의원들과는 정례적인 타운 홀 미팅(공청회)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한인들의 몰표를 얻어 박빙으로 승리한 코널리 의원은 한인회의 요청을 수용해 한인들과 6개월에 한 번씩 타운 홀 미팅을 갖기로 약속했다. 지난달 한인회 주최로 열린 타운홀 미팅에는 버지니아주 상·하원 원내총무를 비롯한 양당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재미 한인회와 미국 주류 사회의 소통이 강화되고 있다. 한인회가 한인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 주류 사회와의 접촉 면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주류 사회에 뿌리를 내린 인사들이 한인회 리더십을 구성하면서 달라진 변화상이다. 한인회 사무실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한인들의 ‘사랑방’ 역할에 국한됐던 사무실은 미 주류 사회와의 소통 공간으로 변모했다.

재미 한인들의 주류 사회 진출도 한인회의 역점  목표 중 하나다. 워싱턴 한인회는 올 연말 선거에서 마크 김 버지니아주 의회 의원이 재선 고지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마크 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황원균 전 버지니아한인회장은 “후원금 10만 달러 모금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면서 “10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면 민주, 공화 어느 당에서도 도전자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사회, 中·베트남보다 위상 낮아…우리도 10년후 보고 美주지사 배출해야”


 

“우리도 10년 내다보고 미국 주지사 만들어내야 한다.”

최정범 워싱턴한인연합회장(미국명 스티브 최·사진)은 “재미 한인 사회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 캄보디아 커뮤니티보다 미 주류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1.5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4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 고등학생 시절 부모가 운영하던 세탁소에 화재가 발생, 가업이 기울게 되자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여행사를 차렸으나 97년 외환위기 사태 당시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좌절을 겪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재기에 성공한 뒤 한인회 개혁 기치를 치켜든 최 회장을 만나봤다.

―워싱턴 한인연합회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1.5세 출신 회장이 됐다. 1.5세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미국에 온 사람들이다. 그래야 정확하게 한국말 할 수 있고 영어도 할 수 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식의 한국적 가치 지향도 있다. 한국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완전하게 미국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 중2 이후에 미국에 오면 생각이 한국 쪽에 가깝다. 1.7세, 1.8세로 부를 수 있겠다. 초등학교 5학년 이전에 오면 미국에 더 동화된다.”

―1.5세 출신 첫 한인회장의 소명이 무엇이라고 보나.

“재미 한인들에게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어떻게 미국 땅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 진출 얘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가 주류사회가 됐다.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게 맞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때다. 이민 2세들의 나이가 40대가 됐다. 이들이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회장 자신이 기존의 이민 1세들과 달라야 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2세와도 달라야 한다. 1.5세로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

―미국 내에서 한인 사회가 베트남, 캄보디아 커뮤니티보다 위상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가 치러질 때 중국, 베트남계는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준다. 한국 사람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인적으로 민다. 민주, 공화당 지지 갈려 있다. 후보 쪽에서 한인 사회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주지사 당선자가 베트남, 중국계 장관은 발탁해도 한국계는 신경쓰지 않는다. 버지니아주에 한국계 장관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기자는 2009년 9월 본 칼럼에서 한·일 역사 갈등과 관련된 미국 행정부의 수수방관적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미국 행정부와 싱크탱크의 동북아 전문가라는 인사들의 일본 편향 행태를 지적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미래지향적인 동북아 정책을 촉구하는 취지의 칼럼이었다.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지원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대표를 만나고 온 직후였다. 코틀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지일파 관료들과 싱크탱크의 동북아 전문가들이 위안부 결의안에 반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분개했다. 거론된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전문가들 중 한 사람은 현재 국무부의 요직을 맡고 있다. 그 즈음에 미국의 유력 일간지라는 뉴욕타임스(NYT)가 한국 관련 기사에서 동해 대신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한 지도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독도 광고

오바마 정부는 여전히 한·일 역사갈등에 관한 한, 오불관언(吾不關焉)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겉으로는 한·일 갈등의 당사자 해결 주의를 내걸지만,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 ‘린치핀’(요체)인 한국과 ‘코너스톤’(주춧돌)인 일본 사이에 공연히 끼어들기 싫다는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미국의 이런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자세다. 일본의 일방적 도발로 한·일 역사 갈등이 돌출될 때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은 백악관과 국무부를 찾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이유에 대해 주미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불개입 정책 때문에 한국 정부의 입장 전달 자체가 실익이 없다는 취지로 들렸다. 과연 그런가.

최근 일본은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 교과서 출판을 허가했다. 일본 외무성은 2011년 외교청서(우리나라 외교백서에 해당)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외교청서가 발간되면 일본 외무성은 각국 해외공관에 독도와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 논리를 홍보하도록 지시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집요하고도 지속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기정사실화’한다. 외교에서 자국의 입장을 상대국과 이해 관련국에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재확인하는 것은 설명과 확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국 입장을 상대국과의 외교 기록에 반복적으로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자국 입장을 견지하고 국익을 지키는 기본적 외교 행위다.

한·일 역사 갈등 현안에서 미국은 핵심 이해 관련국이다. 미국을 향해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망동을 엄중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정식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선례가 되어 향후 독도 사태가 더 악화돼도 미국에 이런 입장을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본은 지금의 행태로 미뤄봤을 때, 한국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를 자국의 입장이 옳다는 기정사실화의 근거로 악용할 것이 확실하다.

미국 국무부 등 정부 기관의 모든 한반도 지도에는 동해가 ‘Sea of Japan’으로 표기돼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이를 근거로 일본해를 고집하고 있다. 국무부 홈페이지는 독도를 ‘일본해에 위치한 리앙크루 암석’으로 표기한다. 리앙크루는 19세기 중반 동해에 진출한 프랑스 포경선 이름으로 선원들은 해도에 나타나지 않은 독도를 리앙크루 암석으로 명명했다. 한·일 역사 갈등에는 오불관언이라는 미국이 정부 기관 홈페이지에는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 편향적 표기를 고수하는 셈이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씩 쌓이면 억지 주장이 기정사실로 둔갑한다. 외교에서 자국 입장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웅변하는 사례이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궤변이 먹히지 않을지라도 오랜 기간 그 주장이 반복되면 미국 정부나 미 국민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 미국 내에서 ‘Sea of Japan’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과정이 그랬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정부와 공무원 노조 간 전쟁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공공 부문 노조원들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최근 위스콘신주가 발효시킨 반(反)노조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위스콘신주 의회는 지난 10일 공무원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연금· 건강보험의 공무원 부담액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을 통과시켰다.

위스콘신주가 기치를 치켜든 이후 오하이오와 미시간, 아이오와, 인디애나 등 다른 주들도 속속 공무원 노조에 선전포고를 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정치권과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무원 노조가 졸지에 정부의 ‘공적 1호’로 전락한 것이다. 주 정부와 공무원 노조가 정면 충돌하게된 배경과 정치적 파장 등을 살펴본다.

 ◆곳간 빈 주 정부, 공무원 노조에 메스=미국 주 정부의 재정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주의회 연합회에 따르면, 일리노이주는 2012 회계연도(2011년 10월1일∼2012년 9월30일)에만 150 억 달러 규모의 재정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체 예산의 45%에 달하는 수치다. 위스콘신주도 같은 기간 18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다른 주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처지는 비슷하다. 재정 적자의 주범은 덩치가 커진 공무원 조직 운영 비용이었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미 예산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예상 연금 지급액을 현가로 환산한 ‘미적립 연금채무’는 전체 채무의 2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 등을 기초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공무원의 급여와 연금 등을 포함한 연 평균 보상(average compensation)은 7만 달러(2009 회계연도 기준)로 민간 기업 근로자들(6만1000달러)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공공 부문 근로자 수는 늘었다. 공무원들의 ‘철 밥통’ 지위가 강화된 배경엔 공무원 노조가 자리잡고 있다. 민간 부문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1977년 23%에서 2010년 8%로 낮아졌지만 공무원의 노조 가입률은 1977년 당시 40%가 2010년에도 유지되고 있다. 연방정부 공무원 노조(AFGE)와 지방정부 공무원노조(AFSCME), 우체국직원 노조(APWU), 미 교원노조(AFT) 등이 대표적인 공무원 노조들이다. 공무원 노조는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성장, 각종 선거에서 ‘큰 정부’ 기조의 민주당을 후원하며 증세를 통한 공무원 고용 보장과 복지 증진을 추구해왔다. 재정 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 정부가 공무원 노조를 공격 타깃으로 선정한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다.
 
공무원 노조 격파 나선 ‘티 파티’=철옹성 같은 공무원 노조에 도전장을 던진 주 정부 뒤엔 ‘티 파티’ 운동으로 대표되는 조세 저항 여론이 버티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티 파티 세력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우위의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주 의회(상·하원 통합)는 33개에서 53개로 크게 는 반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주 의회는 52개에서 32개로 대폭 줄었다. 공화당 주지사도 24명에서 31명으로 늘었다.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던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미시간, 오하이오, 아이오와 등도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공화당은 이들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던 공무원 노조 활동을 제약하려하고 있다. 대부분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주들이어서 공화당 정부는 재정적자 감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위스콘신주도 공화당이 지난 선거에서 탈환한 지역으로 스콧 워커 주지사는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과 손 잡고 공무원 노조에 맞섰다. 재정 적자라는 동일한 문제를 놓고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일리노이주에선 공무원 조직의 거품을 빼는 대신 증세라는 해법을 선택했다. 일리노이주 의회는 연초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폭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무원 노조가 민주당 의회를 움직인 결과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를 위해 뛰었던 조직들은 워커 주지사가 반 노조법을 발의한 직후 공무원 노조를 겨냥한 TV 광고를 내보내며 측면지원하고 있다. 공화당 전략가인 칼 로브가 설립한 ‘크로스로드 GPS’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조 지원 발언을 소개하며 공무원 노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친 노조 성향의 민주당을 후원하고 있다는 TV 광고를 미 전역에 내보냈다. 지난 해 공화당 후보 지원을 위해 7000만 달러를 모금했던 크로스로드 GPS는 이번에도 반 노조법 지지 확산을 위한 광고 비용으로 75만 달러를 투입했다.
 
반격 나선 공무원 노조=위스콘신주의 반(反) 공무원노조법 가결을 계기로 노동계도 반 노조법 확대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 지방정부 공무원 노조(AFSCME) 회장인 제랄드 메켄티는 “공공 부문 노조의 단체 협상권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멤피스 청소부들의 권리를 옹호하다 숨진 역사가 웅변하듯, 우리들이 오랜 세월 투쟁을 통해 획득한 신성한 권리”라면서 “위스콘신주의 반 노조법 채택은 워커 주지사의 오만을 넘어 미국의 기본 가치를 내팽개친 반역사적 조치”라고 분개했다. 노동계는 AFSCME를 중심으로 반 노조법을 발의한 워커 주지사와 이를 통과시킨 위스콘신주 의회 의원들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의 중산층을 복원하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단체 협상권을 강화해 평범한 근로자들이 합리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위스콘신주의 반 노조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반 노조법 추진이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미명 하에 실질적으로는 부유층의 감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여론은 반 노조법에 다소 부정적이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 등의 조사에서는 여론이 재정 적자 보다 반 노조법 시행으로 인한 실업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위스콘신주의 반노조법 제정이 2012년 대선 등을 앞두고 전통적인 지지 세력인 노조를 결집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참 기이한 인연입니다.”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한국과의 인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주일 미군 장교 시절부터 15년 동안 일본 전문가로 활동했는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선임 보좌관으로 특채된 직후 북한 잠수함이 동해로 침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한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이후 프리처드 소장은 한국과 미국, 북한, 중국 등 4개국이 모여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한 4자회담과 북핵 제네바 협상의 산물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련 대북 특사로 활동하며 한반도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11월 영변 핵시설 방문을 포함, 북한을 11차례 방문했다. 북핵 6자회담이 장기간 공전하는 가운데 미 의회 일각에서 북·미 직접 대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미 행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등 워싱턴의 대북 기류 속에서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워싱턴DC에 위치한 KEI 소장 집무실에서 프리처드 소장을 만나 북핵 등 한반도 현안 등을 주제로 환담했다.

―지난 1일 미 상원 외교위가 주최한 북한 청문회에서 존 케리 위원장이 북·미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기존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충돌하는 양상인데 당신은 어느 쪽에 서있나.

“그날 상원 외교위 요청으로 서면 증언을 했다. 내 입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대북 정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현 대북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자칫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가 굳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1874호)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그런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우리는 케리 위원장이 제안한 북·미 직접 대화로 이동할 수 있다. 우선 농업과 재난 구호 등과 같은 인도적 현안에 대한 대화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과거 북·미가 진행했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협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신뢰 구축 방안의 일환으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만나 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4자 대화를 시작할 필요도 있다. 이런 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 등과 일치된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 1874호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이런 일련의 대북 대화는 탁상 공론이 될 수밖에 없다.”


―대북 압박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중국은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것 같다. 최근엔 중국이 김정은을 초청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내가 오바마 행정부에 비판적인 문제들 중 하나가 국무부 대북 제재 조정관들의 활동이다. 첫번째 대북 제재 조정관으로 활동했던 필립 골드버그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매우 긴장했다. 당시 중국은 대북 제재 논의에 적극적이었다. 골드버그가 새로운 직책(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담당 차관보)으로 이동하자 대북 제재 조정관이란 직책은 일 년 이상 잊혀진 자리가 됐다. 그리고 로버트 아인혼 대북 제재 조정관이 그 자리에 임명됐다. 개인적으로 아인혼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베이징을 더 자주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을 더 닦달하지 않으면 중국은 1874호 이행에 소극적이 될 것이다. 그런 사실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결론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제재 이행 과정에서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과거 여러 차례 ‘6자회담은 죽었다’고 말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그렇다. 6자회담은 북한 비핵화라는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대북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데다 북한 내에서 후계체제 구축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 포기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핵 포기의 두려움이 크다. 북한이 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최근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은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일 뿐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을 6자회담 틀 내로 끌어들임으로써 동북아 긴장 수위를 높이는 북한의 도발 행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북한 비핵화라는 당초 목적은 달성하기 힘들다.”


―중동 지역에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북한을 11차례 방문한 전문가로서, 북한에서도 그런 시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나.

“북한 정권은 권력이 잘 통제되고 있는 정권이다. 중동 국가에서 목도되는 민주화 시위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와 비슷한 상황을 굳이 상정한다면,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죽고 권력 공백 사태가 초래됐을 때다. 김정은은 아직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않다. 김정일이 갑자기 죽는다면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일부 권력 공백 지역을 중심으로 분출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동 민주화 시위 같은 규모의 봉기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프리처드와 필자




―얼마 전 국내에서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북핵에 맞서 한국도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상원 청문회에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현재의 한·미 관계를 최상으로 평가했다. 동의하나.

“그동안 한반도 현안을 다루면서 미국의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관계를 지켜봤다. 한·미 관계는 양국 대통령들의 성향과 이념 성향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한·미 관계야말로 당장의 이해 관계를 넘어서야 하는 동맹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 안보, 경제 현안들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복합 동맹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사이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전례없는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정상들 사이의 관계는 실무 차원의 관계를 보다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봤을 때, 한·미 정상의 관계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궁금하다. 미국 내 한국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KEI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미국 내 한국 인식은 좋은 쪽으로 변화해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사실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 대중들에게 조그만 지역 국가에서 세계적 존재감을 키워온 나라로 이미지를 개선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나는 TV에서 현대차 광고를 보고 무릎을 친 일이 있다. 현대차를 사면 당신이 실직했을 때 할부금 납부 문제를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금융위기로 고통받는 일반 미국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읽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 광고였다. 현대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미국인들의 한국 인식이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KEI는 미국의 미래 세대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방문, 미국인들과 대화하고 간행물을 미 전역의 대학에 배포하는 등 한·미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KEI 소장에 취임한 지 5년이 됐다. 언제 보람을 느꼈나. 아쉬움은 없었나.

“아쉬움은 없다.(웃음) KEI 소장에 취임한 직후 한·미 양국 대사가 함께 미국 도시들을 돌며 양국 현안을 미국의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행사를 보고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전·현직 주한 미 대사와 주미 한국 대사들의 경험을 책으로 엮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펴낸 비망록은 한·미 관계의 궤적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산’이 됐다. 이 비망록은 앞으로도 양국 대사들의 경험을 추가해 증보판을 만들어낼 계획이다. 4년 전부터 재미 한국인들의 날을 KEI 차원에서 기념하고 있는데 재미 한국인들의 놀라운 성취가 너무 자랑스럽다.”

대담=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 잭 프리처드 약력(50년생)

▲하와이대 국제관계학 석사 ▲주일 미군 정보장교, 대령 예편 ▲빌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4자(한국, 미국, 북한, 중국)회담 미국 부대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특사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진 프리처드와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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