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백발이다. 얼굴은 야위었고 몸집은 왜소하다. 18대 의원 시절 탈북자 강제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10일 넘게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을 했던 2012년 겨울, 그때 그 모습이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은 “나이 탓인지 다른 곳은 회복됐는데 얼굴은 단식 이후에도 좀체 회복되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북한이 월북했던 우리 국민 6명을 전격적으로 송환했던 지난 25일 동국대 교수 연구실로 박 이사장을 찾아갔다.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면서 목청을 높였다. 그는 2012년부터 국군포로와 탈북자를 돕는 단체 ‘물망초’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 한국 현대사의 희생자들인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국군포로나 탈북자들에게 ‘역사의 조난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박 이사장이다.



―‘역사의 조난자’란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4년 내내 이 표현을 썼다. 교수 시절에도 그 말을 썼지만 전혀 전파가 안 됐는데 의원 되고 국회 대정부 질의 하면서 쓰니깐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돼서 좋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국군포로나 탈북자뿐만이 아니라 아직 우리 곁에 오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과 시베리아 동포들, 이런 분들도 모두 ‘역사의 조난자’들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로 나갔다가 붙잡힌 국군포로들이야말로 대표적인 역사의 조난자들이다. 역대 정부에서 이들은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렇다. 우리 정부도 국민도 차분하게 돌아봤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만 욕할 게 아니다.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나라는 국군포로 문제를 지금도 국방부 군비통제과에서 다루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포로 실종국’을 별도로 두고 있다. 우리로 치면 하나의 국(局)이다. 그들은 전쟁에 나갔다가 실종된 미군의 뼛조각 하나까지도 찾고 있다. 북·미 대화가 단절됐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미군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군포로가 군비통제과 업무라는 건 난센스다. 북한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가. 두 차례나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기간에도 국군포로 문제는 의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비겁한 거다. 북한을 왜 의식해야 하나. 이 부분부터가 이상하다. 전쟁 포로는 반드시 송환하도록 제네바 협약은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는 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국제법 위반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를 남북문제로 접근하려 하는데 당장 유엔으로 가져가야 한다. 6·25전쟁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끌려갔다가 북한에서 숨진 손동식씨 유해가 최근 중국을 거쳐 국내로 봉환됐다. 국군포로 규모는 파악이 되나.

“생존 중인 국군포로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도 북한의 국군포로들로부터 살려 달라는 편지가 저한테 오고 있다. 제3국으로 가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자기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옛날 사진을 첨부해서 가족의 인적사항과 살던 집 주소까지 적어서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는 노란색 보자기에 싸인 편지 뭉치들을 보여줬다) 한 500명 정도 된다. 지금도 이런 편지를 보내오는데 국군포로가 없다고 할 수 있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너무 화가 나서 이분들 얘기를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유력 출판사 8군데를 찾아갔는데 모두 난색을 표명했다. 그래서 직접 출판하려고 지난주에 도서출판 물망초를 등록했다.”

―상품성이 없어서 출판을 못하겠다는 것인가.

“진보진영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이 편지들을 다 읽어봤나.

“다 읽어보고 번호 매기고 분류했다. 눈물 없이는 못 읽는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 국방부에 국군포로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단 한 분도 모셔오지 못하는 한, 국방부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군대 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얘기했다. 군대 안 가려고 어깨 빼고 무릎 망가뜨리는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낼 자격도 없는 거다.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눈 감고 입 다물고 있으면서 극장 가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보면서 기립박수 치는 게 말이 되나.”

―이 편지들이 북한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되나.

“물망초에서 만든 물망초 학교가 있다. 거기 다니는 탈북학생들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하고 거의 매일 통화한다. 우리가 방송에 나가면 그 다음날 바로 연락이 온다. 아버지를 모시고 갈 테니 도와달라는 자녀도 4명 있었고, 북한에서 나가고 싶다는 할아버지도 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내 휴대전화로 이렇게 (북한에서) 문자도 온다.”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국군포로는 어느 정도인가.

“구체적 숫자는 없다. 정전협정 체결할 때 유엔군이 인민군측에 내밀었던 것이 8만2700여명이다. 이 가운데 81명이 돌아왔고 30분이 돌아가셔서 현재 51명이 한국에 남아있다. 81명 가운데 80%는 포로가 아니라 실종자 또는 전사자로 분류됐던 분들이다. 포로 숫자 자체도 정확한 게 없는 거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정부가 해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북한에 문제제기를 할 것도 없이 유엔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군포로를 아직 붙잡고 있는 현행범이라고 고발하면 된다. 이미 81명이 탈북해서 남한으로 넘어왔다. 살아있는 증인 51명이 있다.”

―한국에 돌아온 국군포로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84세 된 국군포로 할아버지 한 분은 휴지 주워서 한달 2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나라인가. 국방부에 얘기하면 거기서는 다들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가서 직접 봐야 한다. 정착금으로 3억∼4억원씩 줬다고 하는데 많은 돈이 아니다. 그분들에게 제공된 임대아파트 가격까지 다 쳐서 계산한 거다. 그분들 남한으로 오는 브로커 비용만 1억원이 든다. 일반인 탈북비용보다 훨씬 많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할아버지들을 총알 날아오는데 업고 뛰어와야 하니 당연히 비싸다. 민주화 유공자들에게는 몇 배 많은 돈이 지급되고 있지 않나.”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정부가 국군포로 요양원을 만들면 그분들 숙식이 해결된다. 얼마 전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군포로들을 만나줬다. 그 자리에서 남 원장은 ‘그동안 국가가 (국군포로 문제에) 너무 소홀했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비겁했다’고 사과했다. 그나마 정부 바뀌고 국가정보원장이 국군포로를 만나는 일이 성사됐다. 뭐가 상식이고 비상식인지 모르겠다.”

―국군포로 유해 송환할 때 정부 도움은 받았나.

“전혀 못 받았다. 외국에서 유해 들어오는 게 힘들지만 청춘을 국가에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돈을 달라는 게 아니다. 이분들이 떳떳하게 귀국할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그런데도 못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한국에 유해 도착할 때 합당한 예우는 갖춰졌나.

“언론이 없다면 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봉고차 안에서 유해에 태극기 덮어주겠다고 하더라. 정부가 국군포로 존재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거다. 국군포로는 북한에서도 노예처럼 수용소 생활을 했고, 대한민국에 와서도 ‘통제 대상’이다. 오죽하면 국군포로가 군비통제과 소관이겠나. 국군포로는 한국에서도 포로다. 이 일 하면서 성질 많이 나빠졌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되더라.”

―지금도 국가가 도와주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국군포로가 있나.

“오늘도 군비통제과 직원을 만나기로 한 이유가 지난번 국군포로 유해를 송환하고 나서 북한에서 연락이 온 분이 있다. 자기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보내왔는데 이분이 국군포로가 맞는지 확인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하물며 짐승도 죽을 때는 자기 고향 쪽에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한다. 귀소본능은 누구한테나 있는 거다.”

―정부는 돈을 주고 국군포로 등을 송환해오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자유를 사다) 제도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원 시절 내내 주장했던 내용이다. 북한이 국군포로가 없다고 하면 없는 건가? 아직 국내에 51분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북한 입장도 있으니 송환 작업은 정부가 물밑에서 작업하는 게 낫지 않나. 독일도 물밑에서 해결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독일은 공개적으로 했다.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했고 독일 언론사가 중간에서 돈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 언론들은 뭐하고 있나. 서독 언론은 베를린 장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단 하루도 기사를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우리 언론은 냄비처럼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는다. 당시 동독 정치범 한명 데려오는 데 우리 돈으로 2000만원에서 시작해 5000만원까지 지급됐다.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북한에 준 것을 생각하면 국군포로들을 다 데려오고도 남는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민서 기자

■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약력

▲1956년 출생 ▲1978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1995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1977∼1989년 MBC 보도국 기자 ▲2008∼2011년 자유선진당 대변인 ▲18대 의원 ▲2012년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동국대 교수 재직

미국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대다수 한국인은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2013년 10월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헌법 해석 변경 노력에 대해 '환영'과 '협력'의 뜻을 밝혔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공격당했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반격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이다. 미국 등 연합국이 1951년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일본은 주권국가로서 유엔헌장 51조에 언급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을 소유하며…’라고 명문화돼 있다. 미국은 6·25전쟁을 계기로 일본을 동북아 안보전략의 요충 국가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미국이 9·11테러 이후 세계적인 대테러 활동 과정에서 일본 자위대의 적극적인 집단방위 노력을 이끌어 내려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나 아베 총리 같은 우경화 성향의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자위대 이지스함의 페르시아만 파견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일본 헌법 개정 또는 헌법해석 변경 시도를 통해 맞장구쳤다.

그럼에도 지금껏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자제하고 있는 것은 국내 반전 여론 때문이다. 일본이 천황제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의 일환으로 고안해낸 ‘평화헌법’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억제해왔다.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인은 영원히 국가 주권으로서의 전쟁과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군대 사용 또는 위협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보수파들은 “일본 헌법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백히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으며, 아베 정부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학수고대해왔다. 현행 평화헌법 체제에서는 미국 군함이 적국에 의해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 자위대는 원조 행위를 일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미·일 밀월(蜜月)시대를 구가했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미·일의 원활한 동맹 작전 수행을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요구했으며, 일본을 지금보다 강한 방위력을 갖춘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우기도했다. 최근 들어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체계에 깊숙이 편입되고 있는 현실은 그 결과물이다.

 

                                                   2013년 10월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



곤란하게 된 건 한국이다. 한·미 동맹을 한반도 안보의 주축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미·일 동맹의 강화 기조를 반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재정적자에 짓눌린 미국이 일본과 함께 동북아 안보 부담을 나눠 지려 하는 것을 반대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미·일의 외교·국방장관들이 만나 축배를 들고 있는 모습에는 왠지 거부감이 앞선다. 대다수 한국인의 감정이 그럴 것이다.

이런 막연한 거부감의 배경엔 100년 전 구한말의 집단 기억도 깔려 있을 것이다. 당시 제 힘으로 제 나라를 지킬 수 없게 된 조선은 미국을 상대로 한 생존외교에 사활을 걸었다가 배신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고종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조·미조약의 ‘거중 조정’(good offices) 조항에 기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아보려 했으나 당시 미국의 국익은 일본과 손잡는 것이었다. 영국에 이어 해양 패권국이 되고자 했던 미국에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였다.

21세기의 미국은 조선에 냉담했던 100년 전의 미국이 아니다. 일본도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태생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해온 반도국가의 지정학적 고충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서슴없이 과거사·영토 도발을 자행하는 일본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100년 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일본이 철저한 과거사 반성의 토대 위에서 ‘보통 문명국가’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미국이 한·일 역사갈등에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지속한다면 일본의 정상국가화도,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도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평양 중구역에 자리 잡은 연회장 ‘목란관’엔 대형 ‘해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금강산과 동해 위로 붉은 해가 떠 있는 사진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일행에게 “저게 해 뜨는 장면 같소, 아니면 지는 장면 같소?”라고 물은 뒤, “아침에 들어와서 보면 해뜰 때, 술 마시다 저녁에 해 질 때 보면 또 저 장면”이라고 자문자답했다는 바로 그 사진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기자가 보기에도 목란관의 해 사진은 떠오르는 것인지, 지는 것인지 쉽게 분간하기 힘들었다. 남북경협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는가를 놓고 온 나라가 두 패로 갈려 야단법석을 떨었을 때, 그 사진이 생각났다. 개성공단 해법이든, NLL 해법이든 정답은 하나일 수 없다. 보수와 진보, 중도가 각자의 해법을 들고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정치가 있는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진보, 그중에서도 이른바 친노(친 노무현) 세력의 대북 해법이 가동된 시기였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도 안보 면에서는 더 과감한 구상을 실험했다. 그 핵심이 NLL 위에 ‘서해 평화수역’을 덮어씌우겠다는 구상이다. 노무현의 대북 접근법은 무모하고 안이했다. 김정일은 노무현의 서해 평화수역 구상을 NLL 무력화의 불쏘시개로 썼다. 노무현정부를 방패 삼아 미·일의 대북압박을 우회하면서 핵·미사일 능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2007년 10월2일 저녁, 목란관을 무대로 연출됐던 한 편의 소극(笑劇)이 떠오른다.

당시 노 대통령이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식사를 하던 도중 만찬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장수 국방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일어나서 “위하여!”를 외치자 옆 테이블에서도 남북 인사들의 건배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노 대통령은 갑자기 술잔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 마이크가 있는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의전에 없던 돌발 상황이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각 테이블에서 건배하는 것을 보니 신명이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테이블은 따라 하자니 그렇고, 안 하자니 기분이 안 풀리는 것 같으니 다 같이 기분을 풉시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계속됐다. “남북한 간에 평화가 잘되고 경제도 잘되려면 빠뜨릴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시고, 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건강해야 합니다. 좀 전에 (제가) 건배사를 할 때 두 분의 건강에 대해 건배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만찬장이 술렁거렸다. 어느 한국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빌어준 일이 있었던가. 노 대통령은 “신명난 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상임위원장, 두 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합시다”면서 “위하여!”를 선창했다.

노 대통령은 그 다음날 오전 김정일과의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수행원들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던 대동강변의 옥류관으로 돌아와 예정에 없던 오찬사를 했다. “남측이 신뢰를 가지고 있어도 북측은 아직도 남측에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 편한 대로 얘기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북측이 보기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의 표현 그대로, 매사에 북한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자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었다고 전제하고 보면, 그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그것(NLL)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라거나 “남측에서는 이걸(NLL)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북핵과 관련해서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다”고 한 발언도 자연스럽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중국의 냉랭한 태도로 의기소침해진 북한 정권이 유독 우리 정부에게만은 협박을 서슴지 않고 있는 이유도, 언젠가는 남한에서 ‘북한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오는 24일 수교 21주년을 맞는 한·중관계가 도약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한·미와 북·중이 맞서는 기존의 대결 구도는 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은 ‘새로운 대국 관계(新型大國關系)’를 외치며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를 재편해 가고 있다. 그 저변에선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이 공조와 갈등의 변주곡을 울리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의 응전 여하에 따라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원하는 한국의 꿈은 중국몽과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양국의 동상이몽 끝에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영원한 중국대사’로 불렀던 황병태(78) 전 중국주재 대사를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나 한·중이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물었다. 황 전 대사는 최근에도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 주목한 저서 ‘침몰하는 자본주의’를 펴내며 중국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미·중 사이에 놓인 한국의 전략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해졌다. 전통의 한·미동맹 기반 위에서 한·중우호를 증진시켜야 한다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정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이명박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졌을 때 이명박정부는 미국에만 연락하고 중국엔 얘기를 안 했다. 미국 핵항모인 조지워싱턴호가 중국의 안마당인 서해로 들어왔다. 중국은 한·미가 한묶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정부는 미국의 앞잡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중국 내에서 북한을 객관화하려는 흐름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완충지역이라는 종전의 인식이 되살아났다. 남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견해가 퍼져갔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이해가 충돌하고 있지만 그런 문제로 전쟁까지 가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잘못되면 미·중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사건 때처럼 북한이 미·중 간에 불화를 조장할 수 있다. 북한이야말로 미·중 갈등의 화약고다. 한국은 미·중과 함께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중 관계가 순망치한의 혈맹 관계에서 정상국가 관계로 변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올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우리 외교사의 대사건이다. 6·25전쟁 정전 60년 만에 미·중이 처음으로 북한문제(북핵 불용)에 공동 합의한 것은 중국이 이념국가, 진영국가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계국가를 지향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제 중국은 세계적 견지의 바둑판을 보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의 김정은 3대세습체제는 시대착오적이다. 북·중 혈맹관계는 다 끝난 얘기다. 중국은 북한을 향해 보통국가로 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스스로 개혁해서 살아남는 길, 고립 속에 망하는 길, 전쟁으로 자폭하는 길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길은 미얀마가 택한 개혁·개방의 생존법이다.”

―북한이 체제를 위협한다고 믿고 있는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겠는가.

“시진핑이란 인물이 있어서 가능하다. 중국이 기름(원유)과 식량을 대주지 않으면 북한은 며칠 못 버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김정은(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불러서 ‘다 해보지 않았느냐. 사는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 내가 도와주겠다. 박근혜 대통령도 돕도록 하고 미국도 돕도록 하겠다’고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걱정하는 체제 보장은 시 주석과 박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해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미얀마 방식의 대북 해법을 얘기했고 중국도 그런 방향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은 그냥 두면 망한다.”

―북한이 망하면 한국 주도로 통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아닌가.

“보수 진영 일각에선 북한 (김정은 정권)을 망하게 하자는 것인데 그러면 부담이 너무 크다. 하루아침에 북한이 무너져도 보통 일이 아니다.”

―미얀마와 달리 북한은 핵 문제가 걸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식 대북 해법도 북한의 선제적인 핵 폐기 조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핵은 중국이 반대하면 무용지물이다. 지금은 (한·미가) 너무 북한의 비핵화에 매몰돼 있다. 북한은 중국이 반대하는 핵을 사용할 수가 없다. 북한이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핵을 사용하는 순간, 북한은 망한다. 개혁·개방이 되면 사람도 달라지고 나라도 달라진다. 중국과 미국, 우리가 같이하면 북한도 지금처럼 (핵개발) 할 수 없게 된다.”

―박근혜정부의 대북 구상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는 좀 다른 구상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을 움직여 김정은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도록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그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북한이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한반도 통일은 어렵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 대통령 측에도 이런 구상을 전달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상황을 관리하는 차원에 그친 회담이었다. 북한을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지, 통일 문제는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에 대한 미래 비전까지는 다루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이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는 할 말을 못했다. 준비가 부족했다.”

―중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가.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반대 안 한다. 한국과 같은 정상국가로 한반도가 통일되길 원한다. 지금 세계가 가는 길은 먹고사는 길이다. 북한도 그렇게 되라는 것이 중국의 요구다. 중국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는 냉전 시절이었다. 미국과 대치하는 세상을 살았다. 지금의 중국은 이념·진영 논리에 갇힌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시 주석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초청하지 않고 있다. 북·중 우호조약 폐기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건가.

“시 주석이 언젠가 김정은을 불러서 북한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북한이 중국에 귀찮은 존재가 되긴 했어도 북·중 우호조약을 폐기하는 단계까지는 안 간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유례없는 경제 모델을 실험 중이다.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보나.

“중국의 국가주도 자본주의를 모든 학자들이 변종이라고 본다. 종국엔 시장경제로 넘어오든가 다시 공산경제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식 자본주의는 생명력이 있을 뿐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체제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발전의 결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공산당 영도를 근간으로 한 중국의 정치체제가 도전받을 수 있다. 우리도 산업화의 성공이 민주화 시대를 낳았다.

“일반적으로 그리 본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시절만 해도 원 총리가 직접 민주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 들어선 뒤엔 민주화 얘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진핑 지도부는 일당 지배의 정치와 자유주의 경제를 혼합한 리콴유(李光耀)의 싱가포르 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은 일당독재라고는 하지만 10년마다 물갈이되는 집단지도체제다. 일인 독재를 막기 위해 덩샤오핑이 만든 제도다. 지도부는 8000만 공산당원 중에서 엄선된다. 이른바 엘리트 민주주의다. 이 또한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른 새로운 정치 모델이다. 동양적이다. 경제발전과 충돌없이 성공할 것으로 본다.”

―주중 대사 시절 ‘미·중 등거리 외교’를 주창,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발언 배경이 궁금하다.

“(93년 4월) 주중 대사로 부임해보니 베이징 대사관은 무역대표부 수준이었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은 무역 상대일 뿐 정치 문제를 논의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당시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북핵이 한·중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정치 문제에선 북한만 상대하니 이래 가지고 무슨 외교가 되겠나. 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 방중 기간에 기자들 앞에서 “북한 문제에 관해서 한국은 중국·미국과 등거리 외교하겠다”고 선언했다. 소환당할 각오로 했다. 국내에선 난리가 났지만 중국은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접이 어떻게 달라졌나.

“내가 그 발언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중국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덩샤오핑(鄧小平) 장남인 덩푸팡(鄧樸方)과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장쩌민 주석과도 자주 만났다. 95년 장 주석이 직접 송별연을 베풀어주면서 ‘황 대사는 중국 사람 마음속에 있는 영원한 중국 대사’라고 했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사진=이재문 기자

■ 황병태 前 주중대사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외무고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13·15대 의원 ▲2대 주중 대사(1993년 4월∼95년 12월) ▲경산대·대구한의대 총장 ▲저서 '경제주의의 종언','자본주의와 민주정치','유학과 현대화','박정희 패러다임','침몰하는 자본주의'

 

+아래는 중국의 경제 발전 전망과 관련, 황병태 전 대사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 기사  

<중앙일보 2013년 8월29일자>

중 사회과학원 연구 고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정덕구 이사장은 “중국은 그동안 절대 권력을 통해 관리를 잘 한 덕에 경제가 고성장할 수 있었지만 1인당 소득 1만 달러에 가까워지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지금 반성 중이다.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찬양하던 중국식 발전 모델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기 위해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이사장(전 산업부 장관)은 “그동안 중국 경제를 이끌어 오던 투입에 의존한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학계·정계 고위 인사와의 교류를 통해 대륙의 속살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로 꼽히는 그는 중국 최대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연구 고문으로 위촉돼 활동하게 된다.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 외교부, 재무부 등의 고위 관리를 대상으로 강연에 나설 계획이다. 다음 달 2일 취임을 앞둔 그를 만났다.

 - 중국 경제,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핵심은 ‘모순적 결합’에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만나고,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의 도시 진입을 장려하면서도 후커우(戶口·주거지 등록)제도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정책 배합이 틀렸다는 자성론이 내부에서 일고 있다.”

 - 중국의 하드랜딩(경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경제가 아닌 체제에 있다. 체제 불안은 곧 경제의 하드랜딩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고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 권력을 통해 관리를 잘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현재 약 6000달러)에 가까워지면 국민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게 돼있다. 당의 주민 관리는 점점 더 어려울 것이다. 정치가 불안하면 경제가 일시에 꺼질 수 있다.”

 - 시진핑(習近平)시대 중국의 과제는.

 “3개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는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의 주요 자원 수송로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목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이 얘기하는 신형대국관계는 곧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테니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는 국민을 극복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다. 시진핑의 과제는 부패로 얼룩진 공산당을 깨끗이 만들어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느냐에 있다. 셋째는 중국적 가치를 극복해야 한다. 중국이 ‘G2’에 걸맞는 문명 국가가 되려면 보편적인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주변국을 포용해야 한다.”

 - 중국 지식인은 한국을 어떻게 보나.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글로벌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주변에서 유일한 시장경제의 나라라는 점에서 그렇다. 금융 선진화 개혁을 이뤄내고, 글로벌 플레이어(기업)를 갖고 있는다는 점에서 참고할 모델로 생각한다. 다양한 교류를 통해 우리와의 경제적 동질감을 넓혀야 한다.”

글·사진=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조선일보 2013년 8월28일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의 속살을 만져 보게 된 기분입니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경제적 성공만 얘기하지 않고, 금융에서 실패해 위기를 맞게 된 이유를 가감 없이 전달할 생각입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26일 여의도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사회과학원 연구고문에 위촉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 최고 싱크탱크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싱크탱크이기도 하다.

정 이사장은 다음 달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연구고문 위촉식을 갖고, 향후 1년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고문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9월 한 달은 집중적으로 중국 정부의 핵심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무부, 외무부, 인민은행 등을 대상으로 공개 강연 4차례, 라운드테이블 방식 토론회 5차례를 갖는다. 정 이사장은 "이번 기회는 국가 발전 모델을 전환하고 있는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간접 컨설팅을 제공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위촉식에서 첫 번째 강연을 하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중국이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다리(bridge)를 4개 건너야 한다고 조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건너야 할 첫째 다리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다리이다. 정 이사장은 "중국은 사회의 투명성과 법치를 강화하고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시장 지배 구조의 다리다. 그는 "이제까지 중국의 성공 모델은 정부 주도로 경제를 직접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앞으로는 시장과 민간과 함께 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는 국제사회 리더십의 다리이다. 그는 "일본은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때 자기만 살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없었는데, 여기서 중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금융 개혁의 다리이다. 정 이사장은 특히 한국과 일본의 실패 지점이 금융이라고 강조하면서 "금융이 낙후되면 서방 세력의 도움 없이 성장이 불가능한데, 외국 자본 유출입을 잘못 관리하면 금융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서방에 기대지 않는 독자 성장을 하려면 금융 개혁과 개방으로 금융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중국사회과학원이 연구고문으로 영입한 이유에 대해 "중국 정부 내 개혁파와 보수파가 향후 중국 발전 모형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자, 중국의 문제와 해법에 대한 외국인의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재정경제원 2차관보를 지낸 정 이사장은 "외환 위기의 경험을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부는 단순한 메시지를 줘야 하고, 정부가 나서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며 "경제정책은 테스트를 하거나 실험해서는 안 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중국에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현철 기자

 


北 핵무장은 美·中 공존 위협
동북아 갈등 막기 위한 고육책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0월 중국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 미 텍사스 크로퍼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으로 초청했다.

북한이 미국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추진 사실을 공개한 직후였다. 이로써 북핵 1차 위기를 봉합했던 제네바 합의 체제는 붕괴되고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북핵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위협이 된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압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장 주석은 “북한은 내 문제라기보다는 당신의 문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라면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몇 달 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만약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면 미국은 일본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중국이 움직이지 않자 부시 대통령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북한에 대한 군사조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다음에야 중국이 움직였고,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됐다고 부시 전 대통령은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밝혔다.

6자회담 과정에서도 중국은 고비마다 북한 편을 들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준비할 때마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을 설득하느라 바빴다. 그런 중국이 최근 들어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워싱턴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의 북핵 저지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뜻이 없었다. 그 때문에 미·중 정상회담 실무팀은 정상회담 당일 새벽까지 공동성명 문구를 놓고 절충을 벌여야 했다. 미국은 “양국은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우려한다”는 표현에 만족해야 했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의 북핵 기조 변경은 국익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변화의 계기는 올 초 북한이 강행한 3차 핵실험이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자체보다 그것이 초래할 동북아의 갈등 상황이다.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은 동북아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것이다. 군국주의 역사를 지닌 일본의 핵 무장은 중국에게 재앙이다. 갈등의 대상이 미국이라면 중국에겐 악몽이다. 북한은 이미 63년 전에 6·25전쟁을 도발, 신생 중국을 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으로 끌어들인 전례가 있다.

신흥 강대국(독일)과 기존 패권국가(영국)의 갈등은 1차 대전을 불렀다.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pivot to Asia)시키고 있는 미국은 태평양을 무대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중은 경쟁하면서 협력해야 하는 모순의 관계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포위하는 억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은 힘이 커진 중국이 자신을 아시아에서 몰아낼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미·중은 과거 독일과 영국이 실패했던 공존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중의 공존을 위협한다. 미 국방부는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영변 폭격은 미국과 중국을 갈등 상황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저서 ‘중국에 대하여’(On China)를 마무리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시아에서 틀림없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 무기에 집착하는 북한 김정은 체제는 중·미의 협력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다. 북한과 ‘항미(抗美) 원조 전쟁’(6·25)을 함께 치른 중국이 북·중 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이달 말 이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비유되던 전통적인 북·중 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미·중이 진지하게 공존을 모색하는 시점에 이뤄지는 것이다. 미·중 모두의 핵심 이해관계국인 한국에겐 외교의 공간이 확장됐다. 이 공간 속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박 대통령의 몫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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