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움직여야 한다. 북한이 2006년 12월 6자회담에 복귀한 것도 중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중국은 움직일 이유가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한미가 삐걱거리면 안 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캠프에서 동아시아 정책 수립에 관여했던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사진)은 5월12일 워싱턴 DC 시내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6자회담의 미래 등 대북 현안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보즈워스 대표가 한중일 순방 이후 북한 방문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방북 가능성은.

“보즈워스 대표가 첫 번째(지난 3월) 방북하려 했을 때는 북한 측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어서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방북할 것으로 본다.”

―방북이 성사되면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돌파구가 마련되는가.

“오바마 정부의 대화 의지를 전달하고 북한에 억류된 미 국적 여기자 2명의 석방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6자회담 대표가 아니다. 북핵 현안을 놓고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보즈워스 대표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의 방북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북한 입장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버거운 협상 상대일 수 있다. 클린턴 장관으로서도 북한이 6자회담과 (2005년 북핵) 9·19 공동성명을 수용하지 않는 한 북한을 방문하기 힘들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리뷰(검토)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대북 정책이나 전략이 마련됐다는 얘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대북정책 검토가 왜 늦어지나.

“과거에 실험하지 않은 새로운 대북정책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안에도 커트 캠벨(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이나 월러스 그렉슨(국방부 아태차관보)처럼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경험해 본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새로운 대북 전략이 있다’고 내놓지 못한다.”

―오바마 정부는 대북 현안의 경우 현상 유지에 만족한다는 것인가.

“현상 유지라기보다는 위기를 피하면서 더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북한 상황이 더 악화되면 미국에도 부담이 되지 않나.

“물론 더 악화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위협 차원에서 본다면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등이 더 중요하다. 북한은 그다음이다.”

―6자회담은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하나.

“6자회담은 관련국들의 지난한 외교적 노력 끝에 태동한 것이다. 클린턴 장관도 언급했듯이 현 상황에선 6자회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6자회담을 대체할 수 있는 다자회담 가능성은.

“미국과 북한, 중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은 한국의 수용 여부가 관건이다. 한국까지 참여하는 4자회담이 좋기는 하나 이는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을 거부하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북한은 핵 보유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6자회담의 판을 깨려 한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인간의 권력욕은 죽음 만이 끝낼 수 있다”고 말한 이는
 ‘리바이어던’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정치 철학자 토머스 홉스입니다.

 오는 6월 은퇴하는 데이비드 수터 미 연방 대법원 판사는
 홉스의 인간론이 적용되지 않는 이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69세에 낙향을 결심한 수터는
법률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법원 판사 자리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번잡한 워싱턴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뉴햄프셔주 시골 농가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
 그가 친구에게 털어놓은 은퇴의 변.


                                                                                                                                출처:뉴욕타임스


 친구인 토머스 래스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수터는 뉴햄프셔주로 돌아갈 마음에
 일부 이삿짐 박스는 풀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고 전했습니다.

 독신인 수터 대법관은 일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대법관 자리를
 ‘최악의 도시에서 수행하는 최고의 직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철학자 칸트 처럼 규칙적이었던 그는
 매일 12시간씩 일했고 매일 일기를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사과와 요거트로 해결했는데
 사과는 꼭지만 빼고 씨까지 다 먹었다고 합니다.

 사치와는 거리가 멀어
 법복이 그가 입은 옷 보다 화려하다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였다는군요.
 사교적 행사엔 취미가 없었으며
 독서와 하이킹, 산책을 즐겼습니다.
 휴가 때면 뉴햄프셔주 농가를 찾아
 수 천 권의 책에 둘러싸인 채 평화를 찾았다고 ,
수터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이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는 중이라는군요.

수터의 농가 사진을 보면, 
외벽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우편함엔 녹이 슬어있어
 현직 대법관의 집이라기 보다는
 시골 농사꾼의 집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았고
 비행기도 타지 않았던 ‘괴짜’ 수터는
 물질에 무관심한 대신
 역사와 대화하고 자연과 벗하며
 영혼을 살찌웠습니다.
 법복을 벗자마자
 돈벌이에 나서는 법관들 보다
 신뢰가 가는 ‘괴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국내 토익(TOEIC) 응시 인원은 200만명, 토플 iBT(TOEFL iBT)는 12만명 돌파하여 두 시험은 국내 도입된 이래 최고치를 달했다. 토플 시헙과 대학입학자격시험(GRE)은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필수코스다. 토익, 토플 주관사인 미 교육평가원(ETS) 필립 태비너 수석 부사장과 서면 인터뷰를 갖고 한국 수험생들이 궁금해할 사항들을 물어봤다. 그는 기존 시험 방식의 끊임없는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 “지식과 창의성, 의사소통 기술, 팀워크 등과 같은 개인잠재지수 평가를 반영하는 GRE 시험을 미국에 올여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영어 능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영어 공부를 대단히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인들의 영어성적이 향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인의 성적을 다른 나라 성적과 비교하는 한국 언론 기사를 읽었는데, 이런 방식은 성적을 해석하는 정확한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보다 내부적으로 향상되는 추이 자체를 봐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한국은 성적이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말하기가 한국에서는 화두인 것 같은데 말하기와 쓰기는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어렵습니다. 말하기와 쓰기는 계속 연습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이지 한국인이라고 특별히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어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경우 당신이 실질적으로 다루는 분야에서 그 언어를 활용할 때 실력이 향상됩니다. 만약 영어로 책을 읽고, TV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그 언어로 글쓰기와 말하기 연습을 한다면 영어 능력은 빠르게 향상될 것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한국 학생뿐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 학생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조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의 4가지 영역-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의 균형 잡힌 향상입니다.”

한국에선 자녀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가족이 생이별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영어권 나라에 가야만 영어 공부가 잘됩니까.

“영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는 어디서든 배울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꼭 해외로 가야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외에 거주하며 언어를 배운다면 그 언어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이점이 있습니다.”

미국 대학이나 한국 회사들은 대체로 토플, 토익 성적이 수험생의 실질적 영어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교육이나 비즈니스 영역에서 영어 점수는 여러 평가 방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말하기나 쓰기보다는 읽기나 듣기에 집중해 왔습니다. 4대 언어능력을 고루 갖추지 않고서 획득한 높은 시험점수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 도입된 iBT 토플이나 토익 스피킹 & 라이팅 부문은 4대 영역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행 토플이나 토익 시험 방식을 개선할 계획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개선할 방침입니까.

“ETS는 개발한 시험을 개선하고, 기존 시험을 새롭고 참신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새로운 평가도구 개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분야 가운데 하나는 ‘비인지적 요소’(non-cognitive)를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이 평가 서비스는 미국에서 올여름 선보일 예정입니다. ‘비인지적 요소’는 지식과 창의성, 의사소통 기술, 팀워크, 그리고 정직 등과 같은 요소를 말합니다. 저희는 이 평가를 ‘개인잠재지수’(Personal Potential Index)라고 부르는데 GRE 시험에 가장 먼저 도입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또한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새로운 평가 서비스를 몇 가지 더 공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쓰기나 말하기 같은 평가는 평가자별로 편차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ETS에는 ‘성과채점서비스’(Performance Scoring Services)라는 부서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고도로 훈련받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온라인 채점 시스템’(Online Scoring System)을 통해 시험 채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채점 또한 긴밀하게 모니터되기 때문에 평가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수험생들이 토플 시험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응시료를 원화 기준으로 고정시키거나 환율에 연동시켜 수험생들의 부담을 완화해줄 수는 없습니까.

“환율은 한미 양국 사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변동하기 때문에 대처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세계 각국에서 시험을 실시하는 데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응시료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수요가 많은 나라일수록 상당한 투자와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야 합니다. 비영리기관으로서 ETS는 회사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고 다소의 수익만을 내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사회투자기금’(Social Investment Fund)을 조성, 자선사업이나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ETS는 한국인들에게 토플, 토익 주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ETS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죠.

“ETS는 세계 180개국 이상 9000여곳이 넘는 지역에서 토플과 토익, GRE, 그리고 미국수능인 SAT와 미국교사자격시험(Praxis Series)을 포함해서 연 5000만회가 넘는 시험을 개발하고, 주관하며 성적을 산출하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ETS를 시험 주관사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발생된 수익의 상당 부분을 더 나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R&D 등에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1947년 설립된 이후 60년간 ETS는 우리의 사명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시험 주관 테스트기관일 뿐 아니라 교육평가 및 연구 전문기관입니다.”

ETS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단연 ‘품질’(quality)입니다. ETS 시험은 1100명에 달하는 전문연구인력들의 작품입니다. iBT 토플은 15년 넘는 시간과 2500만달러(337억여원)의 비용이 투자됐습니다. 최고 품질의 시험은 짧은 시간 안에 개발될 수 없습니다. 품질은 속도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ETS가 추구하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ETS 전 직원의 ID카드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 방법, 연구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교육의 질과 공정성(equity)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는 세계 사람들을 위해 지식과 능력을 평가하고 배움과 그 성과를 향상시키며 교육 및 전문적인 계발을 지원한다.’ 60년 전 채택된 이런 원칙은 현재도 유효합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www.disgrasian.com

 
 아시아계 최초의 ‘아이비 리그’(미 동부 명문 사립대) 총장. 제17대 미 다트머스 대학 총장에 내정된 김용(미국명 Jim Yong Kim)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이름 앞에는 당분간 이 수식어가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김용 박사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으로 점철된 삶이 밑거름이 됐다. 오는 7월1일 다트머스대 총장에 공식 취임하는 그는 현재 지난달 얻은 늦둥이 둘째 아들을 위해 ‘육아 휴가’를 내고 새로운 인생 설계를 짜고 있다.


■철학도를 꿈꾼 개혁파

그는 어려서부터 사회 의식이 뚜렷한 개혁 성향의 행동파였다. 13살 때인 1972년,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와 조지 맥거번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던 미 대선 당시 아이오와 맥거번 선거 캠프에서 선거 운동을 도왔다. 아이오와주 머스커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미식축구팀 쿼터백을 맡으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 브라운대에 입학한 그는 정치학이나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철학에 대한 관심은 아이오와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딴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퇴계 이황과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큰 뜻을 품고 세계를 위해 봉사하라고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김용 박사가 의사의 길로 선택지를 바꾼 과정엔 아버지가 있었다.

“브라운대 재학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일입니다. 아버지가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할 작정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차를 길 옆에 세우더니 ‘네가 전문의 실습을 마친 다음에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좋다. 하지만 너는 소수 인종이다. 기술(skill)이 필요하다. 기술을 먼저 익힌 뒤 다른 것들을 추구하도록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처지에선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꿈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약간의 기술을 지닌다면 그 일은 더욱 나아질 것입니다.”(‘로드 트립 네이션’ 회원들과의 인터뷰)

■전환점이 된 아이티 봉사

1982년 하버드 의대에 입학한 의대생 김용은 흑인 출신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정체성 문제로 고민했다. 동시에 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부단히 모색했다.

김 박사는 그때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났다. 그의 박사 논문 과정을 지도한 하버드대 아서 클레이만 교수(의료 인류학)와 1987년 의료봉사 단체인 ‘파트너 인 헬스’(PIH)를 함께 결성한 하버드 동료 폴 파머가 그들이다. 클레이만 박사는 지난달 김용의 다트머스 총장 지명 소식을 듣고 “그는 대학 총장의 새로운 전범이 될 것”이라면서 기뻐했다.

“브라운 대학과 하버드 의대 시절은 인생의 목표를 확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회 정의를 위한 일에 헌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한국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보다 더 나의 도움이 절실한 나라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하버드대 교지 인터뷰)

클레이만 교수는 평소 의료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은 김용을 최빈국 아이티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던 파머에게 소개했다. 80년대 중반 김용의 아이티 방문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참혹한 가난과 그에 수반되는 질병, 영양실조….

“아이티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아이티와 같은 빈국의 참혹한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나에게 맡겨진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버드대 교지)

그 이후 김용은 아이티와 페루 등지를 돌며 가난한 이들의 질병 치료에 헌신했다. 이 기간에 김용은 가난과 붙어다니는 질병인 결핵 퇴치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 김용 박사가 WHO 에이즈 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
                                     현지 주민들에게 에이즈 예방 및 치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파트너 인 헬스’ 웹사이트


■이종욱 박사와의 만남

김용과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인연은 결핵을 통해 맺어졌다. 페루에서 결핵 퇴치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던 이 전 총장의 부인은 젊은 의학도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이 전 총장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 인연으로 김용은 2003년 1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종욱 박사의 총장 자문관으로 발탁됐다. 이듬해 김용에게 맡겨진 WHO 에이즈 국장직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지금은 벤치마킹 대상이 된 ‘3×5 운동’(2005년까지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운동)은 ‘행동파’ 김용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획기적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WHO 내부에서조차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

“나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러 면에서 행동주의자입니다. 그런 행동주의자가 WHO라는 도구를 손에 넣었을 때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이론을 변화시키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자고 말했습니다.”

당초 목표보다 2년 정도 지체되긴 했지만 ‘3×5 운동’은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에이즈가 만연한 레소토의 보건장관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처음 3×5 운동을 선언했을 때, 우리는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해냈습니다.”(하버드대 교지)

다트머스대 총장 추천위는 “김 박사는 교실 안과 밖에서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는 다트머스의 이념인 배움과 창의, 봉사를 실현한 인물”이라면서 총장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의 문제는 젊은이들의 문제”

대학 학장 등의 경력이 없는 김 박사가 총장에 임명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박사는 총장 지명 직후 “아시아계 대학 고위직 인사가 희소한 가운데 대학 경영 경험이 없는 나를 총장에 지명한 것은 수많은 첫 번째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다트머스대가 나의 다른 활동들을 평가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이제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이웃이나 빈국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박사는 여러 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닮았다. 미국 내 소수 인종 출신으로 젊은 시절 정체성 고민을 극복하고 소외 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은 인생 역정이 그렇다. 김 박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에 사는 소수 인종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정부는 김 박사에게 에이즈 문제를 총괄하는 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박사는 총장직 수락과 관련, “지금까지는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했지만 한 사람이 하는 일엔 한계가 있다”면서 “차세대를 교육시켜서 그들이 더 큰 일을 하도록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5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던 저개발국 출신의 소년에서 미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한 김용 박사. 그가 제2, 제3의 김용을 키워내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7년의 일입니다. 
톰 대슐은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그 것도 상원 원내총무로 여당 실세였으니
그 위세가 가히 볼만했겠지요.
그 해 대슐은 자신의 정치 후원금 모금 행사를

지역구인 사우스 다코타 주의
러시모어 산에서 개최합니다.

러시모어 산은 역대 대통령들의 대형 얼굴 조각으로 유명하지요.



이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은
러시모어 국립공원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 조각상(위 사진 맨 왼쪽) 머리까지 올라갑니다.

만약 일반인들이 그랬다면?

당연히 쫓겨나고 벌금 500달러를 물어야 합니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톰 대슐이

정치권 로비가 주 업무인 로펌(앨스턴 앤 버즈)에 둥지를 튼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구시대 정치에 물든 그에게
로비스트로의 변신은 손바닥 뒤집기였을 것입니다.

그의 변신 과정에서 다리를 놓은 인사는
이미 그 로펌에 둥지를 틀고 있던 로버트 돌이었습니다.
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돌 역시
구시대 정치 속에서 성장해온 인물입니다.
1995년 여름,
돌은 자신에게 2만 달러 이상 후원금을 낸 
이글스 멤버들을

야간에 미 국회의사당으로 특별 초청합니다.
그리곤 자신이 가이드가 되어 이 곳 저 곳 구경을 시켜줬다는군요.
만약 이 시간에 일반 관람객이 의사당에 들어갔다면?
의회 경비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동병상련이라고,

대선에서 낙마한 돌이 잘 나가다 추락한 대슐을

챙겨주는 차원에서 중간에서 다리를 놨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이 받은 연봉은?
K스트리트(워싱턴 D.C. 로비 회사 밀집 거리) 관행상
돌이나 대슐 정도 거물이면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은 너끈히 받았을 것입니다.
로비회사에서 그 돈을 거저 주지는 않았겠지요.

70년대만 해도 전직 의원들의 3% 만이 로비스트로 전직할 정도로
국회의원이 명예로운 공복의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요즘은 낙선한 뒤 로펌으로 옮겨가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로
국회의원 직책이 이권화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바로 대슐 같은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워싱턴 정치를
확 바꾸겠다는 그의 목소리에 국민들이 응답한 결과입니다.
그런 오바마가 대슐을 보건장관에 내정한 것은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로비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오바마였기에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오바마로서는,
단기필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세론을 타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 대신 자신을 지지해준 대슐에게
뭔가 정치적 보답을해줘야한다는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현실과 타협한 순간,
그는 정치적 편의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워싱턴 정치꾼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전락했습니다.
오바마는 상처를 입었고
대슐은 그의 이미지에 걸맞게 결국 탈세 문제가 불거져
장관 내정자 신분을 스스로 벗어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은 3일 CNN 등과의 연쇄 인터뷰를 자청해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사과해야했습니다.
자신감이 흘러넘치던 그 답지 않게,
“스스로 자초한 상처라서 화가 난다”(ABC방송),
 “내가 망친 만큼 벌 받아도 싸다”(NBC방송)면서
회한의 감정도 내비쳤습니다.

AP통신은 오바마의 이 같은 행태를
그의 저서인 '담대한 희망'에 빗대
‘담대한 시인’이라고 부르면서
임기 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세라고,
좋게 봐줬습니다.
과연 오바마다운 솔직한 자세이고
얼마간 까먹은 점수를 만회했을 법도 하지만
그의 행보가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경구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슐과 돌의 사례는
 탐사 보도 기자인 찰스 루이스의 저서
The Buying of Congress(의회 매수하기)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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