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7년의 일입니다. 
톰 대슐은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그 것도 상원 원내총무로 여당 실세였으니
그 위세가 가히 볼만했겠지요.
그 해 대슐은 자신의 정치 후원금 모금 행사를

지역구인 사우스 다코타 주의
러시모어 산에서 개최합니다.

러시모어 산은 역대 대통령들의 대형 얼굴 조각으로 유명하지요.



이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은
러시모어 국립공원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 조각상(위 사진 맨 왼쪽) 머리까지 올라갑니다.

만약 일반인들이 그랬다면?

당연히 쫓겨나고 벌금 500달러를 물어야 합니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톰 대슐이

정치권 로비가 주 업무인 로펌(앨스턴 앤 버즈)에 둥지를 튼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구시대 정치에 물든 그에게
로비스트로의 변신은 손바닥 뒤집기였을 것입니다.

그의 변신 과정에서 다리를 놓은 인사는
이미 그 로펌에 둥지를 틀고 있던 로버트 돌이었습니다.
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돌 역시
구시대 정치 속에서 성장해온 인물입니다.
1995년 여름,
돌은 자신에게 2만 달러 이상 후원금을 낸 
이글스 멤버들을

야간에 미 국회의사당으로 특별 초청합니다.
그리곤 자신이 가이드가 되어 이 곳 저 곳 구경을 시켜줬다는군요.
만약 이 시간에 일반 관람객이 의사당에 들어갔다면?
의회 경비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동병상련이라고,

대선에서 낙마한 돌이 잘 나가다 추락한 대슐을

챙겨주는 차원에서 중간에서 다리를 놨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이 받은 연봉은?
K스트리트(워싱턴 D.C. 로비 회사 밀집 거리) 관행상
돌이나 대슐 정도 거물이면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은 너끈히 받았을 것입니다.
로비회사에서 그 돈을 거저 주지는 않았겠지요.

70년대만 해도 전직 의원들의 3% 만이 로비스트로 전직할 정도로
국회의원이 명예로운 공복의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요즘은 낙선한 뒤 로펌으로 옮겨가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로
국회의원 직책이 이권화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바로 대슐 같은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워싱턴 정치를
확 바꾸겠다는 그의 목소리에 국민들이 응답한 결과입니다.
그런 오바마가 대슐을 보건장관에 내정한 것은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로비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오바마였기에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오바마로서는,
단기필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세론을 타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 대신 자신을 지지해준 대슐에게
뭔가 정치적 보답을해줘야한다는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현실과 타협한 순간,
그는 정치적 편의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워싱턴 정치꾼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전락했습니다.
오바마는 상처를 입었고
대슐은 그의 이미지에 걸맞게 결국 탈세 문제가 불거져
장관 내정자 신분을 스스로 벗어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은 3일 CNN 등과의 연쇄 인터뷰를 자청해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사과해야했습니다.
자신감이 흘러넘치던 그 답지 않게,
“스스로 자초한 상처라서 화가 난다”(ABC방송),
 “내가 망친 만큼 벌 받아도 싸다”(NBC방송)면서
회한의 감정도 내비쳤습니다.

AP통신은 오바마의 이 같은 행태를
그의 저서인 '담대한 희망'에 빗대
‘담대한 시인’이라고 부르면서
임기 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세라고,
좋게 봐줬습니다.
과연 오바마다운 솔직한 자세이고
얼마간 까먹은 점수를 만회했을 법도 하지만
그의 행보가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경구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슐과 돌의 사례는
 탐사 보도 기자인 찰스 루이스의 저서
The Buying of Congress(의회 매수하기)에서 인용했습니다.

 

[오바마의 미국 새로운 도전] ⑥흔들리는 미국 패권
 
  • 미국이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을 통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했을 때, 프랑스 전략학자 루시앙 푸아리에는 이를 고대 로마의 자마전투에 비유했다. 로마는 자마전투 이후 ‘제국’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프랑스 전 외무장관인 위베르 베드린이 이름 붙인 ‘극초강국(Hyperpower)’에 걸맞은 세계 패권을 확립한 듯했다. 미국의 지배력은 광범위하고 강력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미국의 패권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과 신흥 강대국의 부상, 미국 주도 경제 질서에 충격을 가한 금융위기 등이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 군사 패권의 위기=미군은 걸프전에서 군사력의 절대 우위를 유감없이 전 세계에 선보였다. 더 이상 미군에 대항할 세력은 없으며, 미국은 군사적 헤게모니를 통해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미국 패권을 흔든 근본적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엔 결의안을 바탕으로 동맹국의 협조를 얻어 전쟁을 시작한 아버지 부시의 전례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보복 전쟁’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국제적 고립이었다.

    과거의 동맹국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은 탓에 미국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미군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라크에서 종파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결국 정권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교체됐다. 군사 전술의 측면에서도 걸프전과 나토의 코소보 개입 전쟁 때 통했던 미국식 군사작전은 게릴라전 위주의 비정형 테러 세력을 만나면서 과거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출신인 자크 사피르는 최근 저서 ‘제국은 무너졌다’에서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대하지만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군사적 능력은 약화됐으며 광범위한 동맹을 구축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미 경제 패권의 위기=미 군사 패권이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면 미 경제 패권은 1997∼99년 진행된 금융위기 와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많은 학자들은 진단한다.

    미국은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확산과 러시아 금융시장 붕괴를 예상하지 못했고, 2001년 남미 국가들의 부도사태에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은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법도 내놓지 못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식 금융 모델, 경제모델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그 직후 터진 ‘인터넷 버블’ 붕괴와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경제는 취약성을 드러낸 채 수술대에 올라 있다. 지난 1월 출범한 오바마정부는 1조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을 쏟아부을 태세지만 미국 경제가 예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침체 와중에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나고 있는 재정 적자도 미국의 경제 패권를 약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미국의 2009년 회계연도에서 3개월이 지나는 동안 재정적자는 4852억달러나 늘어났다. 이는 2008년 회계연도에 기록한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적자(4550억달러)를 뛰어넘은 수치다.

    경제 환경의 변화는 과거 미국이 금융분야에서 누려온 독점적 지위를 약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금융위기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G20 정상회의에 신흥국이 대거 참여한 사실은 미국의 경제패권 약화를 말해 준다.

    ◆도전받는 미국 패권=러시아 푸틴 총리는 대통령 시절인 2007년 2월 독일 뮌헨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나는 현대 세계에서 일극 체제는 용인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독불장군식 세계 경영 원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EU)의 맹주 역할을 하는 국가도 “동맹국은 미국의 인공위성이 아니다(2003년 독일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는 입장을 견지하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었다. 2001년 러시아와 중국 주도로 상하이협력기구(SCO)가 창설되고 2005년 중국·러시아 합동 군사훈련에 인도와 이란 등이 옵서버로 참여한 일련의 사태도 미국 패권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EU의 통합, 인도나 브라질 같은 지역 패권국가의 부상으로 미국의 힘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저서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에서 “유럽이 미국의 부상을 막을 수 없었듯이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인도, 유럽의 부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의 부상을 막기 위한 시도는 오히려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저항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자크 사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탄생하기도 전에 반죽음 상태에 빠진 것이다.

    조남규 기자

    •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입니다(We remain the most prosperous, powerful nation on Earth).”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사를 통해 천명한 이 문구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미국이 지닌 힘에 필적하지 못한다. 미 국방비 규모는 2007년 5500억달러를 훌쩍 넘기며 전 세계 국방비 총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경제력에서도 미국의 힘은 세계 최고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14조달러로 전 세계 GDP의 20%에 육박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통계를 근거로 미국의 패권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금융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교수는 “유럽연합(EU)이나 중국이 21세기 안에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기 힘들다”면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겠지만 서서히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도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해도 미국의 패권은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며 “중국 학자들은 대부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여러 강대국이 공존하는 ‘일초다강(一超多强)’ 시대가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자크 사피르처럼 “21세기는 경제적으로, 지정학적으로 다극적 질서의 세기”라며 “오늘날 일극 질서는 소멸했으며, 당분간 부활하기도 힘들며, 미국 헤게모니는 점점 더 격렬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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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23일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성장의 과실을 즐기며 살아온 미 중산층은 전 세계인의 모델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높은 임금과 의료보험 같은 양질의 복지혜택을 받으며 40년 정도 근무한 후 기업연금 보장을 받으며 은퇴했다. 그리고 안락한 노년을 즐기다 편안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적자생존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하고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리면서 중산층의 삶은 고단해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융위기가 촉발한 최근의 경제 침체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제 침체 직격탄 맞은 미 중산층=아이다호주 보이즈에 거주하는 릭 캡(44)은 부인과 두 자녀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다.

    2003년 보이즈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회사에서 연봉 6만5000달러의 괜찮은 일자리를 구했다. 이사오면서 30년 상환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받아 17만5000달러짜리 집도 한 채 장만했다. 부인은 대학에 등록했고, 첫째 아이에게는 바이올린 레슨을 시켰다. 디즈니랜드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면서 학자금 대출(4만달러)과 신용카드 빚(1만1000달러)이 생겼으나 집값(30만달러)이 뛰었던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06년 말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치가 추락하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캡의 가족은 허리띠를 졸라맸으나 지난해 10월 캡이 정리해고되면서 ‘빈곤선’(4인가족 기준 연 수입 2만1200달러 이하) 으로 내려앉았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캡 가족의 일화를 전하면서 “보이즈의 실업률이 지난해 11월 6%로 전년 동기보다 3.3% 늘었다”고 보도했다.

    중산층을 위협하는 실업 공포는 보이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노동부의 1월 초 발표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2008년 한 해 동안 사라진 일자리는 250만개에 달했다. 이 같은 수치는 1945년 이래 최대치다.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7.2%로 치솟았다. 지난주(1월12∼17일) 조사에서도 신규 실업자 수가 58만9000명으로 한 주 전에 비해 6만2000명이 증가했다고 미 노동부가 22일 발표했다.
    ◆의료비로 파산하는 미 중산층=쿠바 망명자 후손인 호세 카브레라는 2005년 의료빚 때문에 개인파산을 선고받았다. 급성충수염으로 입원해 수술하고 하루 입원했을 뿐인데 병원 측은 그에게 1만2000달러를 청구했다. 다니던 회사 보험으로는 충당할 수 없어 신용카드로 의료비를 갚아 나가던 중에 아내가 출산하면서 병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널리스트인 쓰쓰미 미카는 저서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에서 “1980년대 이후 미 정부가 복지 축소정책으로 전환한 후, 중산층 사람들이 잇달아 파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2005년 통계를 보면 개인 파산 204만 건 중 절반 이상이 비싼 의료비 부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의료비는 중산층의 가계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다. 전미의학생협회(AMSA)에 따르면 미국민 가운데 의료보험 무가입자는 4600만명으로 이 중 900만명이 어린이다. 직장에서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회사도 2006년 전체 회사의 59%로 줄었다. 카브레라의 경우처럼 보험은 있지만 보장이 불충분한 보험 가입자도 2500만명에 달해 자칫 큰 병에 걸리면 빈곤층으로 내려앉기 일쑤다. 질병이 걸리면 해고를 당하기 쉽고 해고를 당하면 직장의료보험 혜택도 없어진다. 그들 중엔 가진 돈을 다 써버리고 자진해서 공적 의료보험(메디케이드) 대상인 빈곤층이 되기도 한다.

    중산층을 재생산하고 빈곤층 자녀의 사회적 이동을 촉진하는 교육체계도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미 대학 등록금은 지난 25년 동안 중산층 가계소득 증가 추세를 앞질러 중산층 미국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공공정책고등교육센터(NCPPHE) 연례 보고서를 인용해 대학 등록금과 각종 경비가 1982∼2007년 사이에 439% 상승, 같은 기간 중산층 가계소득 증가율(147%)을 3배 가까이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중산층 제약하는 소득 불평등=지난 30년 동안 미국 전체 경제는 성장했으나 실질 가계 소득 증가율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면 그 모든 부는 어디로 간 것일까? UC버클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는 최근 저서 ‘슈퍼자본주의(Super Capitalism)’에서 이 같은 물음을 던진 뒤 “대개는 가장 높은 곳(소득 최상층부)으로 갔다”고 진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한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라면서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하버드 법대 파산법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2005년 보스턴리뷰에 “미국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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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 의사당을 밖에서 보면
의사당 돔이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돔 내부의 로툰다 홀이야말로
미 의회의 심장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본떴다는 로툰다 홀은
천정의 프레스코화가 압권입니다.
로툰다 홀에 서서 180 피트 위의 천정을 바라보면
브루미디 작품인 조지 워싱턴의 승천(昇天)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이 작품을 좀 더 클로즈 업을 하면 이렇습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워싱턴이 15명의 여자들과 함께 하늘로 오르는 광경인데

 

2명은 자유와 승리를, 나머지 13명은

독립 전쟁 후 미 합중국에 가입한 13개 주를

상징한다는군요.

로툰다 홀은 영예로운 시민들의 유해가 조문객을 맞기 위해

잠시 안치되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추모객을 맞기 위해

며칠 동안 로툰다 홀에 안치됐고요,




에이브러햄 링컨과 케네디, 아이젠하워 대통령,

 

에드가 후버 FBI 국장, 헨리 클레이 상원의원, 더글라스 맥아더,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에서 전몰한 무명 용사 등이

이 홀에서 추모됐습니다.

 

 로툰다 홀의 남쪽에 위치한 옛 하원 회의장입니다.



초창기 미국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역사적 현장이지요,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정치가 라파예트가
미 의회에서 연설한 첫 외국인이 된 장소이고요
,

제임스 매디슨이나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앤드류 잭슨,

밀러드 필모어 등이 이 곳에서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특히 '대머리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와 이 곳과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그가 출마한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도 과반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헌법에 따라 하원으로 결정권(각 州가 한 표씩 행사)이 넘어갔는데

존 퀸시 애덤스는 1825 2 9일 이 곳에서

13개 주의 찬성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가 퇴임하자 고향 주민들이 하원 의원으로 추대,

17년 동안 하원 의원으로 이 곳에서 봉사했고요,

자신의 의석에서 쓰러져 숨집니다.

지금은 이 곳이 National Statuary Hall로 변해

각 주에서 헌정한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각자 자신들 주의 대표 선수만을 골라 보낸 조각상들이지요.

버지니아주는 남북 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
텍사스주는 텍사스 건국의 아버지 샘 휴스턴.

이런 식으로 50개 주가 2명씩 선발하도록 한 때가 1864년인데

미국 사람들 무슨 일이든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50개 주 전부 최소한 1명씩 선발을 마무리한 시점이 1971년입니다.

아직도 5개 주는 나머지 1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 곳에서 미 의회 지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합니다.

 
 옛 하원 회의장에서 로툰다 홀로 통하는

 문 위에 눈이 머뭅니다.
 Car of History라는 조각상인데
 
역사의 수레바퀴 정도로 부르면 되겠네요.




역사의 여신 클리오가 시간의 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 많은 미국사의 주역들이 이 곳을 거쳐갔지만

오직 클리오 만이 덧 없는 인생사를

말 없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의 태자' 무덤가에 서서

신라의 천년 사직을 회고한 소설가 정비석의 심정이

조금은 공감이 됩니다.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다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당선자의 집권기는
미 역사상 일대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재임에 성공한다해도 8년에 그칠 집권기간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점이 수 백 년 후에도 샛별처럼 빛나길 기원합니다.


찾아가는 길은 신비했습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지만

온통 나무 천지인 그 곳은

햇빛이 차단된 채 어둑했습니다.

태양마저 사라진 저녁이 되자

주위는 암흑으로 변해

헤드라이트에 비쳐진 도로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캠핑장에선 제일 안 쪽의 오두막을 내줬는데

가는 길 내내 무섭다고 했던 아내는

꼭, 연쇄 살인범이 나타날 것 같은 곳이라며

밤새 군시렁거렸습니다.

아침에 눈 떠 보니,

정말 으슥한 곳이긴 하더군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북단에 위치한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찾아갈 때의 일입니다.

 

 원시의 침엽수림이 우거진 그 곳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들의 나이는 2000 살이 넘었다는군요.

 

이 나무가 2000년 넘게

한 곳에 서 있었다는 공원 안내인이 말이

잘 믿기질 않더군요. 








사진 속의 배불뚝이 안내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숲 속으로 한 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태고적부터 존재한 레드우드 나무군락은

수 천 년의 세월과 폭풍을 동반한 바람,

건기(5월~11월) 동안의 가뭄, 번개 등에 의한 화재,

이렇게 4가지 요인에 의해 그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켜왔다는 게

배불뚝이의 설명입니다.

 

 이 곳에서 트레일 코스로 접어들자

가족들은 탄성을 지르며 나무에게로 달려갑니다.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숲 길을 걷다보면

여행의 피로도 한결 가시는 느낌입니다.




나무 나라 답게

캠핑장도 나무 일색입니다.

저녁 시간, 죽은 나무 둥치 속에 들어앉아 

고기를 구워먹고있자니

구석기 시대의 고인돌 가족이 된 것 같아

모처럼 동심의 기분에 젖어들었더랬습니다.

 

"애들아, 구워먹게 공룡알 2개만 들고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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