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
그 낭만성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지만
우리는 이제 압니다.
여행 기간 전부가 무지개 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날 때 품었던 기대가 실망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만 느끼고 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떠나는 것은 머무는 것 보다 창조적 행위입니다.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광경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은
자연이 안겨주는 커다란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와 석양, 절벽, 동굴, 스위스 산맥 등은
영국의 수필가인 조지프 애디슨이
인간 정신을 숭고하게 고양시키는 장소의 사례로 들었던 곳입니다.
 
그런 장소가 왜 우리 정신을 고양시킬까요?
풍경은,
인간의 힘보다 크고 인간에게 위협이 될 만한 힘을 보여줄 때만
숭고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영국의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의 견해입니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우주는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 우리는 연약하고 한시적이고
우리 의지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필연성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것이 사막의 돌과 남극의 얼음 벌판에 쓰인 교훈'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캐나다 서부 로키산맥이 만들어낸 밴프 지역은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선사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입니다.
광대한 빙하 지대와 그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들을 바라보노라면
인생의 유한성이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프게 각인됩니다.
 
'The Icefields Parkway'
레이크 루이스와 재스퍼 국립공원를 잇는 Hihgway 93 North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빙원(氷原) 공원도로'인데
캘거리시 크기 정도(약 325 평방km)인 컬럼비아 빙원을
통과하는 길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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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프 국립공원과 재스퍼 국립공원 사이의 230km 길은
산맥 사이로 빙하를 바라보면서 달릴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컬럼비아 빙원은 8개의 빙하로 구성돼 있는,
북반구에서 가장 큰 빙원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빙원이라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보우 호수와 페이토 호수 등을 둘러보며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컬럼비아 빙원의 한 자락이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한 자락인 아싸바스카 빙하의 꼬리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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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매장 처럼 생긴 아싸바스카 빙하 꼬리는

1844년 경에만 해도 차들이 주차돼 있는 부분까지 내려와있었다는군요.
기후변화에 따라 그 꼬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했는데
최근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갈수록 꼬리가 짧아지고 있다고,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센터 직원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여름에는 녹아서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보충하면서
원상복구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지금처럼 겨울이 따뜻하다면
머지않아 지금 보이는 꼬리도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로 이 곳에서 아싸바스카 빙하를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스노코치 투어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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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카 타고 아싸바스카 빙하 한 쪽 귀퉁이에서
기념사진 찍으러 온 것인 만큼 경거망동은 금물.
몇 년 전 관광객 한 명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 크레바스 속으로 빠져
얼어죽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크레바스 위로 쌓여있는 눈이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죠.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아싸바스카 빙하가
북극해와 대서양, 태평양 등 3개 대양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3개 대양의 수원이 되는 곳은 없다는군요.
생각할수록 묘한 곳이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싸바스카 빙하에 도착하기 전,
컬럼비아 빙원의 지류 중 가장 긴 싸스카치완 빙하를 바라볼 수 있는
파커리지 트레일 코스가 있습니다.
2.5km 정도 걸어가면 파커리지 둔덕에 올라서
눈과 바위 뿐인 황량한 툰드라 지대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레이크루이스에서 아싸바스카빙하까지 오는 길엔
보우, 에머랄드, 페이토 호수가 여행객을 반깁니다.
 
밴프 호수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유치한 평을 내려본다면
레이크 루이스는 원숙한 40대 여인,
미네완카는 풍성한 어머니의 모습,
보우 호수는 갓 시집온 새댁,
에머랄드 호수는 깜찍한 처녀,
페이토 호수는 요염한 아가씨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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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토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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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우 호수
 

페이토 호수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이토 호수는 뒤로 펼쳐진 미스타야 계곡과 어울려
가슴 시원한 전망을 선사합니다.
여름철 보우 호수 주변은 야생화가 만발,
호수가 벤치 위에 준비한 음식을 펼쳐놓고
허기를 달래는 피크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센터부터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선와프타 강과 나란히 달려갑니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선와프타 폭포와 아싸바스카 폭포가 차례로 나타나
묘미를 더합니다.
 
재스퍼 국립공원 남쪽 게이트에 닿기 직전
에디스 까벨산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꺾어들면
산 정상의 빙하 녹은 물 속에 둥둥 떠다니는 빙하 부스러기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이색 체험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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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인간의 왜소함을 절감케하는 저 의자...
 
 
밴프시 북쪽에 위치한 레이크 루이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 이름을 딴 이 호수는
빅토리아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 고인 것으로
그 때문에 호수는 눈이 시릴 정도의 청록색을 띠고 있고
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인 낮은 수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면의 빅토리아 산 양 옆으로는 르프로이산과 페어뷰산이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좌우 대칭이 완벽한 산을 배경으로 파란 하늘과 흰 빙하, 비취색 호수가 놓인 이 풍광.
 
 

 


 

 Creative Commons/Flickr: bradw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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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 호수들 특유의 청록색은
빙하 녹은 물 속에 가는 모래(微砂)나 침적토 같은 암분(岩粉)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빛을 받아 반사시키면서 우리들의 눈을 황홀케하는 것이지요.
시간과 빛의 양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오지만 대개는 청록색입니다.
터키옥 빛, 에머랄드 빛, 비취 빛 등등의 표현들이 있는데,
glacial-green이라는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제일 맘에 듭니다
 
대개 레이크 루이스를 찾는 여행객들은
에피타이저나 디저트로 모레인 호수를 찾습니다.

호수 주위로 머리 위에 빙하를 인 10개의 봉우리가 호위하고 있어 이채롭습니다.
이 봉우리들은 20달러 짜리 캐나다 지폐에 배경 화면으로 사용된 적도 있답니다.
가장 높은 델타폼 봉우리 높이가 무려 3424m에 이릅니다.
산에서 굴러내린 돌이 자연제방이 돼서
만들어진 호수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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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시 북동쪽에 위치한 미네완카 호수.
'미네완카'는 인디언 말로 '물의 정령이 깃든 호수'라는 뜻이랍니다.
20세기 초 댐으로 막아 호수가 더 커졌습니다.
송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시끄러운 모터보트도,
낚시꾼들도 보이지 않아
물의 요정이란게 있다면
거처로 삼을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수기인 7월인데도 생각보다 한산.
문명이 인간들을 이 곳에 불러들이기 전까지는
더욱 한갓진 곳이었겠지요.
 
밴프 호수나 강들, 특히 보우강에는 물고기 천지인데
보다 북쪽의 호수들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군요.
호수가 너무 깊이 언 나머지 산소 결핍으로 물고기가 떼죽음당하는
이른바 'winter kill' 현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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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완카 호수
 

 레이크루이스에서 출발한 여정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북극 지방에서 나타나는 백야 현상 덕분에
마치 해거름에 숙소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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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스퍼 국립공원 동쪽에 위치한 캠핑장, 해거름 같은 밤 10시의 모습



<여행 일정>
Banff 인근 Canmore 1박->Banff 관광->Banff 인근 돌아보기->Icefield Parkway(Highway 93) 타고 Jasper로 이동->중간에 위치한 Lake Louise에서 2박->Jasper 3박

*Banff attractions

                                                              Banff Springs Hotel(1888년 설립된 캐나다 퍼시픽 철도회사 소유 호텔)

 

 

지난 6월17일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단체 회장들이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고 있었을 때다. 토론 말미에 정일용 기자협회장이 느닷없이 국가보안법 문제를 꺼내들었다. “국회, 시민단체들과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정보공개법 개정 등을 논의하고, 이때 국가보안법도 같이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은 ‘뜬금없이 웬 국가보안법이냐’고 반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알권리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묶어서 다루자는 정 회장의 주장에 가타부타 답변하지 않았으나, 이후 구성된 TF에서 정부 측은 ‘그것이 언론계의 요구라면 수용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2004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정한 바 있다.

참여정부로서야 이 문제를 놓고 언론계와 다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단체와 정부 간에 진행된 협의에서 ‘국가보안법이 언론자유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조항을 공동발표문에 넣기로 합의한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정부와 언론계가 손잡고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밀어붙인다 해서 되어질 일도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언론계의 일치된 견해도 아닐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그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 회장은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 보도에서 정보 접근권을 축소하는 악법이니까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정 회장은 남북관계를 오랫동안 취재해 왔으며, 2005년 12월 기협회장에 출마할 때 주요 공약으로 ‘국보법 개폐 추진’을 내세운 바 있다. 언론계 대표로 정부의 협상 상대로 나간 인사가 개인적 소신을 언론계 입장인 양 내세운 꼴이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정치권과 논의해야 할 사안을 흥정 대상으로 삼은 정부의 태도도 적절치 않다. 월권도 이만저만한 월권이 아니다.

조남규 정치팀 기자

 

 

 

 

 

 

 

 

 

 

 

 

 

 

 

 

  

 

 

 

 

 

 

 

 

 

 

 

  

 

 

 

과테말라의 고대사는 마야 문명의 시대다. 출발이 기원전 4~6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마야 문명은 과테말라 북동부에서 시작됐다. 마야문명은 A.D. 9세

기까지 융성했으나 그 즈음해서 갑자기 쇠락했다. 천문, 수학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1000년의 마야 문명이 왜 갑자기 사라져갔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전염병설, 전쟁설, 옥수수 경작지 부족설이 제기됐고 심지어는 외계인 도래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마야문명이 사라진 뒤 1524년 스페인이

정복할 때까지 과테말라 지역은 부족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의 옛 수도다. 안티구아는 '오래된'이란 뜻을 지닌 스페인어다.

지금은 인구 3만 정도가 거주하는 이 도시에는 '중미 중세 유럽의 도시', '배낭 여행자들의 도시', '중남미 여행의 허브' 등의 수식어가 붙어있다.

안티구아는 마야 문명을 일으킨 마야인의 땅이다. 16세 스페인이 이 곳을 정복한 뒤 중미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한 거점 도시로 활용했다.

1773년 안티구아는 역대급 지진의 타격을 받았다. 도시의 주요 기능은 1776년 안티구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과테말라시티로 이전됐다.

안티구아에는 스페인 총독부 건물과 대성당, 중미 최초의 대학인 산 카를로스 대학교, 식민지 예술 박물관 등이 남아있어 일년에 100만명 가량의 관광객

이 찾아오고 있다. 

   

 

 

 

 

 

 

 

 

 

 

 

 

 

 

                             안티구아 시내의 길은 돌길이다. 그 위로 마차가 다닌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십자가 언덕에서 바라본 안티구아 시내. 아구아 화산(물의 화산)이 정면에 보인다. 

 

 

 

 

 

 

 

 

아마존이 원산지인 고무 나무는 19세기 들어 유럽인들을 대거 남미로 불러들였다. 고무는 철강과 화석연료와 함께 산업혁명 시기의 필수 원료였다.

유럽인들은 안티구아를 비롯한 남미 거점 도시들을 만들어내면서 조약돌로 포장된 도로에 야외 카페, 유럽 스타일의 산책 공원들을 조성했다. 

  

 

 

 

 

 

 

 

 

 

 

 

 

 

 

 

과테말라 티칼 지역에 위치한 고대 마야 문명의 건축물 제1호 신전. 대략 732년에 완성된 피라미드로 석회암 계단이 높이 47m로 쌓여 있다. 신전 상부 문틀에 재규어가 조각돼 있어 '재규어 신전'으로 불린다.

 

 

과테말라 원주민 여인들은 직접 짠 무명 등의 천연소재로 전통의상을 만들어 입는다. 색상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과테말라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천으로 가방, 조끼, 테이블보, 침대 커버, 블라우스 등을 만든다. 원주민은 이 옷에 별, 달, 해, 꽃, 옥수수, 원, 네모, 줄 같은 무늬를 만드는데 옷이 화려할수록 더 높은 지위와 부를 상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섬유업체들이 과테말라에 진출한 이유 중 하나도 과테말라인들의 섬세한 직물 기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30일.
국내에선 시한을 하루 앞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이냐, 결렬이냐의 갈림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순방에 동행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짐도 풀지못한 채,
꼼짝없이 31일 새벽까지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에서 대기해야 했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29일 오후 특별기에 탑승,
9시간 가량 비행해서 한국에 도착한 것이 오전 9시였고
FTA 협상이 '시한 연기'로 가닥잡힌 것이 그 다음날 새벽이었으니
도하 숙소에서 일어난 뒤 집에 돌아갈 때까지 40시간 넘게
숙면을 취하지 못한 셈입니다.
게다가 비까지 뿌려댄 날씨 탓인지,  
몸에 오한이 들고 몸살기가 돌더군요.
 
새벽 귀가 길-,
문득 세도나가 떠올랐습니다.
미 애리조나주의 황톳빛 마을 세도나.
 
생각만으로도 몸이 훈훈해지는 세도나는
기운이 넘치는 땅입니다.
전자기 에너지인 '볼텍스'(Vortex)가 충만한 곳으로 알려져
전 세계의 명상가와 기 수련가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단학선원도 세도나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령술사인 페이지 브라이언트는 이 볼텍스를
'여성적인 전기 에너지와 남성적인 자기 에너지,
중성적인 전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는 특별한 장(場)'이라고 정의하더군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구요,
이른바 땅 기운을 잘 느끼는 도인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니
우리같은 범인들은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요.
그 분들이 세도나를 선전하는 사이트엔
정말 기가 센 땅이란 느낌이 드는 사진들이 올라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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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tewaytosedona.com

 
 
 번개가 내려치는 바로 저 곳이
볼텍스가 가장 강한 곳이라는 '벨 록(Bell Rock, 종 처럼 생겼죠)'입니다.
평상시 벨 록은 코발트빛 하늘에 하얀 구름, 세도나의 상징색인 황토색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풍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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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tewaytosedona.com
 
 세도나에선 짬짬이 차에서 내려 땅을 밟아야 한다더군요.
기를 느껴보라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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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트막한 구릉 위에 올라가면
세도나의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명물인 '벨 록'도 한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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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에어포트 메사'(Airport Mesa)에서 내려다 본 세도나의 전경.
에어포트 메사 또한 볼텍스가 강한 곳이라는데
해 떨어질 때의 석양 풍경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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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볼거리는
바위 틈에 지어진 '홀리 크로스 채플'(Holy Cross Chapel)
1956년 마거릿 브런즈윅 스토드의 건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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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안에서 바라본 세도나
 
 

 세도나라는 이름은 어처구니 없게도
1902년 초기 정착자 중 한 사람인 칼 슈네블리가
우체국 지부를 신청하면서 아내의 이름인 세도나로
적어낸 것이 지명으로 채택됐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고독과 침묵의 땅이었던 세도나가
지금은 매년 13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했습니다.

혹시 플래그스태프에서 세도나로 코스를 잡았다면
89A 도로를 타고 오시게되는데
계곡을 타고 세도나로 내려오는
위태위태한 협곡의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입니다.
까닭없이 삶이 무력해지고
이유없이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면
인디언들의 성지, 세도나를 떠올려봅니다.
 
여담입니다만,
세도나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이상수 노동부 장관입니다.
출입처가 국회에서 금융감독원으로 바뀌면서
소식이 끊어졌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4년 미 조지타운 대학 연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2002년 대선이 끝난 뒤
대선 자금 수사 과정에서 구속됐습니다.
후에 선거자금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는 공소사실을 제외하곤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 했지만,
그 탓에 2004년 총선엔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감방 안에서 선거에 압승한 우리당의 환호성 소리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그는 지친 기색이었습니다.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그는
'감방 안에 앉아있다가도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고 올라와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장관은 단전 호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배운 단전 호흡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참 후 이 장관을 다시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았고 생기에 넘쳐있는 듯 했습니다.
세도나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귀국해서 노동부 장관에 발탁된 것을 보면
당시 세도나에서 받은 '기'가 효력을 발휘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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