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고대사는 마야 문명의 시대다. 출발이 기원전 4~6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마야 문명은 과테말라 북동부에서 시작됐다. 마야문명은 A.D. 9세

기까지 융성했으나 그 즈음해서 갑자기 쇠락했다. 천문, 수학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1000년의 마야 문명이 왜 갑자기 사라져갔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전염병설, 전쟁설, 옥수수 경작지 부족설이 제기됐고 심지어는 외계인 도래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마야문명이 사라진 뒤 1524년 스페인이

정복할 때까지 과테말라 지역은 부족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의 옛 수도다. 안티구아는 '오래된'이란 뜻을 지닌 스페인어다.

지금은 인구 3만 정도가 거주하는 이 도시에는 '중미 중세 유럽의 도시', '배낭 여행자들의 도시', '중남미 여행의 허브' 등의 수식어가 붙어있다.

안티구아는 마야 문명을 일으킨 마야인의 땅이다. 16세 스페인이 이 곳을 정복한 뒤 중미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한 거점 도시로 활용했다.

1773년 안티구아는 역대급 지진의 타격을 받았다. 도시의 주요 기능은 1776년 안티구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과테말라시티로 이전됐다.

안티구아에는 스페인 총독부 건물과 대성당, 중미 최초의 대학인 산 카를로스 대학교, 식민지 예술 박물관 등이 남아있어 일년에 100만명 가량의 관광객

이 찾아오고 있다. 

   

 

 

 

 

 

 

 

 

 

 

 

 

 

 

                             안티구아 시내의 길은 돌길이다. 그 위로 마차가 다닌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십자가 언덕에서 바라본 안티구아 시내. 아구아 화산(물의 화산)이 정면에 보인다. 

 

 

 

 

 

 

 

 

아마존이 원산지인 고무 나무는 19세기 들어 유럽인들을 대거 남미로 불러들였다. 고무는 철강과 화석연료와 함께 산업혁명 시기의 필수 원료였다.

유럽인들은 안티구아를 비롯한 남미 거점 도시들을 만들어내면서 조약돌로 포장된 도로에 야외 카페, 유럽 스타일의 산책 공원들을 조성했다. 

  

 

 

 

 

 

 

 

 

 

 

 

 

 

 

 

과테말라 티칼 지역에 위치한 고대 마야 문명의 건축물 제1호 신전. 대략 732년에 완성된 피라미드로 석회암 계단이 높이 47m로 쌓여 있다. 신전 상부 문틀에 재규어가 조각돼 있어 '재규어 신전'으로 불린다.

 

 

과테말라 원주민 여인들은 직접 짠 무명 등의 천연소재로 전통의상을 만들어 입는다. 색상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과테말라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천으로 가방, 조끼, 테이블보, 침대 커버, 블라우스 등을 만든다. 원주민은 이 옷에 별, 달, 해, 꽃, 옥수수, 원, 네모, 줄 같은 무늬를 만드는데 옷이 화려할수록 더 높은 지위와 부를 상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섬유업체들이 과테말라에 진출한 이유 중 하나도 과테말라인들의 섬세한 직물 기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30일.
국내에선 시한을 하루 앞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이냐, 결렬이냐의 갈림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순방에 동행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짐도 풀지못한 채,
꼼짝없이 31일 새벽까지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에서 대기해야 했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29일 오후 특별기에 탑승,
9시간 가량 비행해서 한국에 도착한 것이 오전 9시였고
FTA 협상이 '시한 연기'로 가닥잡힌 것이 그 다음날 새벽이었으니
도하 숙소에서 일어난 뒤 집에 돌아갈 때까지 40시간 넘게
숙면을 취하지 못한 셈입니다.
게다가 비까지 뿌려댄 날씨 탓인지,  
몸에 오한이 들고 몸살기가 돌더군요.
 
새벽 귀가 길-,
문득 세도나가 떠올랐습니다.
미 애리조나주의 황톳빛 마을 세도나.
 
생각만으로도 몸이 훈훈해지는 세도나는
기운이 넘치는 땅입니다.
전자기 에너지인 '볼텍스'(Vortex)가 충만한 곳으로 알려져
전 세계의 명상가와 기 수련가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단학선원도 세도나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령술사인 페이지 브라이언트는 이 볼텍스를
'여성적인 전기 에너지와 남성적인 자기 에너지,
중성적인 전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는 특별한 장(場)'이라고 정의하더군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구요,
이른바 땅 기운을 잘 느끼는 도인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니
우리같은 범인들은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요.
그 분들이 세도나를 선전하는 사이트엔
정말 기가 센 땅이란 느낌이 드는 사진들이 올라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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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tewaytosedona.com

 
 
 번개가 내려치는 바로 저 곳이
볼텍스가 가장 강한 곳이라는 '벨 록(Bell Rock, 종 처럼 생겼죠)'입니다.
평상시 벨 록은 코발트빛 하늘에 하얀 구름, 세도나의 상징색인 황토색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풍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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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tewaytosedona.com
 
 세도나에선 짬짬이 차에서 내려 땅을 밟아야 한다더군요.
기를 느껴보라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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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트막한 구릉 위에 올라가면
세도나의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명물인 '벨 록'도 한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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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에어포트 메사'(Airport Mesa)에서 내려다 본 세도나의 전경.
에어포트 메사 또한 볼텍스가 강한 곳이라는데
해 떨어질 때의 석양 풍경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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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볼거리는
바위 틈에 지어진 '홀리 크로스 채플'(Holy Cross Chapel)
1956년 마거릿 브런즈윅 스토드의 건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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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안에서 바라본 세도나
 
 

 세도나라는 이름은 어처구니 없게도
1902년 초기 정착자 중 한 사람인 칼 슈네블리가
우체국 지부를 신청하면서 아내의 이름인 세도나로
적어낸 것이 지명으로 채택됐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고독과 침묵의 땅이었던 세도나가
지금은 매년 13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했습니다.

혹시 플래그스태프에서 세도나로 코스를 잡았다면
89A 도로를 타고 오시게되는데
계곡을 타고 세도나로 내려오는
위태위태한 협곡의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입니다.
까닭없이 삶이 무력해지고
이유없이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면
인디언들의 성지, 세도나를 떠올려봅니다.
 
여담입니다만,
세도나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이상수 노동부 장관입니다.
출입처가 국회에서 금융감독원으로 바뀌면서
소식이 끊어졌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4년 미 조지타운 대학 연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2002년 대선이 끝난 뒤
대선 자금 수사 과정에서 구속됐습니다.
후에 선거자금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는 공소사실을 제외하곤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 했지만,
그 탓에 2004년 총선엔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감방 안에서 선거에 압승한 우리당의 환호성 소리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그는 지친 기색이었습니다.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그는
'감방 안에 앉아있다가도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고 올라와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장관은 단전 호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배운 단전 호흡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참 후 이 장관을 다시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았고 생기에 넘쳐있는 듯 했습니다.
세도나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귀국해서 노동부 장관에 발탁된 것을 보면
당시 세도나에서 받은 '기'가 효력을 발휘한 모양입니다.
 
 

 

 

 

 

 

 

 

 

 

 

 

 

 

 

 

 

 

 

 

 

 

 

 

 

 

 

 

 

 

 

 

 

 

 

 

 

 

 

 

 

 

 

 

                                 양고기. 비릿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마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가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에서 치른 전쟁에서 이긴 뒤 전쟁 과정을 그림으로 새겨서 만든 원형 기둥. 

 

 

 

 

 

 

 

 

 

 

 

 

 

 

 

 

 

 

판테온(Pantheon)으로 부르는 만신전((萬神殿). 로마의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었으나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회로 개조됐다. 그 덕분에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내부로 들어가면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 중앙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E.H.곰브리치는 저서 '서양 미술사'(백승길,이종숭 옮김. 도서출판 예경)에서 "판테온 내부는 궁륭형 천장과 그 꼭대기에 하늘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는 거대한 둥근 방이다. 다른 창문은 하나도 없으나 실내 전체가 위로부터 풍부하고 고른 빛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토록 차분한 조화의 인상을 주는 건물을 별로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육중한 느낌이 전혀 없다. 이 거대한 돔은 마치 또 하나의 하늘처럼 당신의 머리 위에 자유스럽게 떠 있는 듯이 보인다"고 썼다.

 

 

판테온 신전 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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