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책국엔 재정경제 전문위원이 18대 총선 이후 공석이다.

맡고 있던 전문위원이 총선에 출마하면서 후임이 최근에야 임명됐기 때문이다. 후임은 30일자로 발령이 났다는 이유로 현직에 머물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5월 국회에서 국회 재정경제위는 단 하루도 문을 열지 않아 여당 전문위원 자리가 공석인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는 29일 자동폐기되는 재경위 계류 법안들 중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이 들어 있다.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을 인하하는 방식으로 기름값을 떨어뜨리는 게 법안의 골자다.

통합민주당 문석호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을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최근의 기름값 상승 사태는 국제유가 상승에 기인한 만큼 세금을 인하해 기름값을 낮추는 방안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이 법안은 지난 1월 여야가 17대 회기 내 처리하자고 합의해놓고도 정작 5월 국회가 열리자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사이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화물차 영업자 등 생계형 경유 사용 업자들은 수지를 맞추지 못해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는 지경이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단은 27일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갖고 유가상승에 따른 서민경제 대책마련 특위를 구성키로 결정했다. 전형적인 ‘뒷북 때리기’가 아닐 수 없다. 법 개정이 필요한 대책이라면 18대 국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여야의 18대 원구성 협상은 소고기 파동에 휘말려 언제 타결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왜 ‘민생국회’로 이름 붙인 5월 국회에서 기름값 인하 법안의 대안을 논의하지 않았는가. 통합민주당은 왜 수수방관했는가. 여야 원내대표들의 책임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17대 마지막 국회인 5월 임시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는 16일까지 단 한 차례도 소집되지 않았다.

이번 임시회의 회기는 24일까지다. 재경위는 회기 내 일정을 잡아놓지 않고 있어 계류 법안들은 오는 29일 17대 국회 만료일에 자동폐기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18대 총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장애인차량 LPG특소세 면제나 법인세율 인하 등은 재경위에서 조세특례제한법이나 법인세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5월 임시국회 개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법인세 인하 법안을 5월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대표적 민생법안으로 꼽았다.

통합민주당도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과 휘발유 및 경유 값 인하를 유도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을 5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야 할 대표적 민생법안으로 선정, 발표했다. 두 법안 역시 재경위 계류 안건이다.

그런데도 재경위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 재경위원장인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전에 뛰어들었고, 한나라당 재경위 간사였던 엄호성 의원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했다. 후임 간사는 선정되지 않았다는 게 한나라당 행정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간사인 문석호 의원은 낙선 후 지역구에 머물고 있다.

정 위원장 측은 이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특별한 안건이 없어 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민생법안 처리 지연을 상대당 탓으로 돌리는 데만 급급해하고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치는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한 여름에 설원을 만난다면?

상쾌한 상상입니다.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고산지대가 아니고서야 그런 곳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런 착각을 들게하는 곳은 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화이트 샌드 모뉴먼트'입니다.

텍사스 서쪽 끝 도시인 엘파소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뉴멕시코주 산타페을 가는 길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얀 모래로 이뤄진 사막입니다.

주변은 온통 붉은 색을 띠고있는데

유독 이 지역만 하얗습니다.

하얀모래 공원 초입까지는

'무슨 하얀모래가 있다는 거야'라는

의심이 들 정도의 풍경입니다만,









비지터 센터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정말 눈 밭에 선 듯한 느낌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이 산 안드레스 산맥이고

그 반대편에 새크라멘토 산맥이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그 사이에 움푹 들어간 지형의 툴라로사 분지가 놓여있는데

하얀모래 사막은 바로 이런 지형 속에서 탄생한 오묘한 작품입니다.

신은 바람을 이용해 하얀모래를 만들어냅니다.

과학자들이 풍화작용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3,4월경엔 시속 45마일(72km)로 부는 바람도 잦다고 합니다.


 저는 겨울에 찾았지만

여름에 가도, 이 모습 그대로 입니다.

눈이 아니기 때문이죠.

머리털 나곤 처음보는 광경에

모두 신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 눈 위에 그랬듯이,

모래 위에 이름을 써봤습니다.

아들 놈은 재밌다며 달려들고,

집 사람은 유치하다는 표정이군요.



 이 곳이 유명한 것은

세계 최대의 집섬(Gypsum)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보니, 집섬은 '석고'라고 해석돼 있더군요.

안내 책자에는 다른 지역 사막의 모래는 석영이나 규소로 이뤄졌는데

이 곳 모래는 칼슘과 유황이 주 성분이라는군요.


  www.nujphoto.org



저도 지질학엔 문외한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하얀 모래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이 세상에는 사물의 본질을 끝까지 탐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의 인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탐구형 인간은 지진을 만나도

놀라기 보다는 "이게 웬 횡재냐"면서

지진 현상을 직접 경험한다는 사실에 흥분한다나.

어쨌든 하얀모래 사막은

그 곳을 둘러싼 치우아후안 사막은 물론

인근 모하브 사막이나 소노란 사막과도 사뭇 다른

생태계를 발전시켜온 때문에

지질학자들은 '사막 속의 사막'으로도 부릅니다.


 

 그 사막 속에 서니,

아이의 키가 훌쩍 커 보입니다.


 




『그리고 북녘의 동포들이여,목메어 불러도 대답없는 북녘의 형제자매들이여.소리쳐 불러보아도 아무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우리들 가슴은 미어지기만 합니다』설날인 10일 낮12시 경기도 파주군 임진각 망배단에서 실향민 2백여명이 모여 망향경모제를 지내고 있었다.

동서화해의 국제정세에도 아랑곳없이 분단반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 철조망 앞에 차려진 제상에는 매서운 삭풍으로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땅,새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휴전선을 왜 우리 이산가족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뼈저린 아픔만 겪어야 합니까』
통일여성안보회 김천혜자씨(52)가 「북한동포에게 띄우는 글」을 읽어 내려가자 설움에 북받친 실향민들의 흐느낌으로 제단주위는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올해로 10년째 망향제를 주최한 통일경모회장 오훈칠씨(83)는 『10년 전만해도 저같은 실향민 1세들이 많이 나와 망향의 설움을 서로 달래곤 했다』며 『그러나 이젠 그 절반 정도가 북에 두고 온 혈육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며 「무심한 세월」을 원망했다.또 제단앞 참배객 방명소에서 참배객을 맞고 있던 이정봉씨(82)는 『해가 갈수록 낯익은 얼굴들이 줄고 부모와 함께 오던 실향민 2세들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례를 휴양지 콘도에서 지내는 요즘 세태에 비춰볼 때 남한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북에 있는 고향과 친척들의 얘기를 가슴에 새겨들지 않는다고 야속해 할 수만은 없지요』
이씨는 이산가족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갈수록 엷어져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1·4후퇴때 북에 여섯 형과 누나 한분을 두고 홀로 남하했다는 평남출신의 박인용씨(65)는 이산가족이 겪는 「분단의 아픔」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남한에서 낳은 세 아들과 며느리 손자등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재작년 남북한의 「기본합의서」가 채택됐을 때 곧 고향땅을 밟을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고 털어놓은 박씨는 『남북한 위정자들이 이같은 실향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물끄러미 북녘하늘을 바라보았다.<조남규기자> 1994.2.10

 

신문기자 사회에서 '출판 기념회'라는 표현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기명 기사가 처음으로 활자화되는 날,

동료 기자들에게 한 턱 내는 자리를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고 우스개삼아 얘기한다.

위의 기자 칼럼은 나의 '바이 라인'(기자 이름)이 달린 첫 기사다.

수습 기자는 '몇 명'이라고 세지 않고

'몇 개'로 세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던 수습시절이었다.

경찰서에서 새우잠을 자며 혹독한 기자 훈련을 받던 수습 시절,

내 이름이 활자화된 신문을 받아들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2007.10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북측의 예측불가성이었다.

기자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할 줄로 알고 몇 시간 앞서 행사장에서 대기하다 허탕을 치곤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 마지막 날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공동식수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표지석을 준비해갔다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신 나오는 바람에 되가져 온 것도 그런 정황 속에서였다.

지난 14일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이 “북한에 가져간 표지석에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두 정상의 이름이 들어 있어 표지석을 설치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을 때만 해도 표지석 파문은 해프닝으로 비쳤다. 두 정상의 공동식수가 무산된 만큼 두 정상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김만복 국정원장이 한참 뒤 다시 방북해 설치한 표지석엔 노 대통령 이름만 넣었다는 것이다.

천 대변인은 당초 가져간 표지석을 설치하지 못한 데 대해 ‘북한에서 표지석을 퇴짜 놓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비판하면서 “상식을 가지고 최소한 앞뒤를 따져보고 기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훈계했다.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가 준비해갔다가 되가져온 250kg짜리 표지석.(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김만복 국정원장이 지난해 12춸18일 방북해 설치한 70kg짜리 표지석.


그러나 정작 앞뒤를 따져봐야 할 사람은 천 대변인 본인이다.

천 대변인의 해명과 달리 첫 번째 표지석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표기돼 있었던 사실이 15일 확인됐기 때문이다. 두 표지석 모두 노 대통령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북측과 문구까지 합의한 첫 번째 표지석은 왜 설치하지 못했는가. 당초 만든 250㎏짜리 표지석이 나중에 설치된 70㎏짜리로 축소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천 대변인이 ‘상식을 가지고 앞뒤를 따져보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답할 차례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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