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을 때 가끔 눈길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거실 한 쪽에 걸려있는 양탄자입니다.
연전에 걸프만에 면해있는 카타르에서 사온 것입니다.
아내나 아이들은 물론 집을 찾는 방문객들마다
"발 매트를 왜 벽에 걸어놨느냐"고
냉소적인 코멘트를 불러일으키는 양탄자이지만
저에겐 각별한 물건입니다.
(이 글은 쓰고 한 참 뒤, 이 양탄자는 결국
아내가 화장할 때 깔고앉는 방석 대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에 걸린 것 보다 훨씬 정교한 문양의 양탄자> 

언제든 중동 지역을 찾게되면
양탄자를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게된 것은,
20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서머싯 몸의 대표작인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난 뒤의
결심이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어본 분이라면
방황하는 청춘의 대명사, 우리의 필립이
인생 선배인 크론쇼에게서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라는 화두를 건네받는 대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왜 인생이 양탄자인가?

소설이 끝나갈 즈음,
몸은 필립의 독백 형식으로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2007년 3월, 카타르를 찾았을 때
카타르 수도 도하는 갓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약동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2006년 아세안 게임을 유치하는 등
적극적인 개방, 개발 정책을 추진하며
'제2의 두바이'를 꾀하고 있는 카타르의 힘이었습니다.


경기도 만한 크기의 카타르
는 세계 최대의 가스전을
보유하고 있는 자원 강국입니다.

 하마드 현 국왕은 1995년 부왕인 칼리파 전 국왕이 스위스로 휴가간 사이에 궁정 무혈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습니다.

 권좌에 오른 하마드는 빈국 카타르를 1인당 국민 소득 20만 달러에 이르는 알부자 나라로 탈바꿈시켰다는군요.

 

 
 양탄자 얘기로 돌아가면,
제 눈을 사로잡은 양탄자는
아랍 전통시장인 '수크'를 배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페르시아 민족의 후예가 운영하는 양탄자 가게는 저를
20대의 아득한 추억 속으로 이끌어갔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페르시아 양탄자에 대한 희구.

 

가게 안에는 다양한 무늬에
현란한 색채의 양탄자들이 즐비했습니다.
이란 여성들이 몇 년에 한 장씩 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공예 양탄자라면서,
주인은 은근히 저의 구매 욕구를 부추겼습니다.

 이름모를 이란의 여인네가
수놓듯 한 땀 한 땀 그려나간 무늬를 좇다보면
과연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란 말에 공감이 갑니다.
'인생=페르시아 양탄자'라는 공식을
서머싯 몸이 필립의 입을 빌려 풀이한 해답은 이렇습니다.

 크론쇼를 생각하며 필립은 그가 주었던 페르시아 융단을 떠올렸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 갑자기 그 해답이 떠올랐다. 그는 픽 웃었다. 답을 알고 나니 수수께기 문제를 받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략>

 크론쇼가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은 바로 그 것을 말해주려 했던 듯 하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 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 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알지못할 샘에서 흘러나와 알지 못할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 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운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삶들은-헤이워드의 삶도 그 중 하나이지만-우연이라는 눈먼 무관심에 의해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끊겨 버린다. 그래서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위안이 편하다. 크론쇼와 같은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늬다. 그러한 삶도 그 나름대로 정당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관점이 바뀌고 옛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 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있는 사람이 자기 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인간의 굴레에서' 민음사, 송무 옮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의 필립은
수많은 좌절을 겪은 뒤
종국엔 이런 식으로 양탄자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샐리와의 소박한 삶을 선택합니다.

 여러분들이 짜고 있는 양탄자는
무슨 무늬입니까.


  • 미국 경제침체의 골이 깊어가면서 금융위기의 도화선을 제공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을 자부하던 월가의 금융 CEO들은 리스크가 큰 금융상품으로 ‘머니 게임’을 벌이다 작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주택건설업체 CEO들은 경제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의 공범으로 낙인찍힌 채 경제 호황기에 그들이 누렸던 천문학적 규모의 돈잔치와 과소비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존경받던 CEO들의 추락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강하다.



    지난 10월6일 미 하원 금융위기 청문회장.

    리처드 풀드 리먼브러더스 CEO는 청문회장에서 ‘CROOK’(사기꾼), ‘SHAME’(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적힌 카드를 든 시위대에게 수모를 당했다. 청문회를 주재한 헨리 왁스먼 의원은 회사 파산신청 직전 퇴사 예정 간부에게 2300만달러의 특별급여를 지급하고 풀드가 지난 8년 동안 급여와 보너스 등으로 5억달러를 수령한 점을 지적하면서 “파산한 회사의 CEO로서 공정한 일이냐?”고 따져물었다. 풀드는 고개를 숙였다.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 풀드의 펜트하우스와 코네티컷주 저택은 각각 2100만달러, 2500만달러를 호가한다. 유명 화가의 그림 등 2억달러어치의 예술품도 소장하고 있다. 뉴스위크지는 그의 부인 캐시 풀드가 회사가 파산신청한 달에도 명품 쇼핑에 매주 5만∼10만달러를 뿌리고 다녔다고 보도했다.

    풀드가 청문회에서 공개 망신을 당한 직후 이번엔 AIG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태가 폭로됐다. 미 정부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파산을 면한 AIG 고위 임직원들이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고급 휴양지에서 골프와 마사지 등을 즐기며 44만달러를 쓴 것이다. AIG의 마틴 설리번 CEO도 청문회장에서 ‘JAIL NOT BAIL’(구제금융 대신 감옥으로)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 ◆월가의 탐욕=금융회사 CEO들의 천문학적 보너스는 월가의 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릴린치의 존 테인, 모건스탠리의 존 맥 등 월가 CEO 몇몇은 빗발치는 여론에 밀려 올해 보너스를 포기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가는 매년 보너스 잔치를 벌여왔다.

    미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골드만삭스의 경우, 로이드 블랭크페인 회장이 5400만달러를 수령하는 등 7명의 경영진이 지난해 2억4200만달러를 챙겼다. 손실이 발생한 올해에도 경영진에게 60만달러씩의 기본급을 제공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합병된 후 구제금융까지 받은 메릴린치의 존 테인 회장은 2007년 12월에 취임한 직후 보너스로 1500만달러를 받고 추가로 6800만달러어치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그는 94년 전통의 메릴린치가 간판을 내린 올해에도 연말 보너스로 500만∼1000만달러를 요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보너스 포기 선언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투자은행 ‘빅5’가 지난 5년 동안 경영진에게 지급한 보수는 31억달러에 달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2007년에도 이들 빅5는 직원들에게 평균 35만달러씩 모두 660억달러를 지급했다.

    AP통신은 지난해 미국 내 116개 은행이 경영진 600여명에게 지급한 봉급과 보너스가 16억달러에 달했으며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금융사 경영진조차 수백만달러의 보너스를 받아갔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현금 보너스는 물론 스톡옵션, 자가용 비행기, 골프 회원권,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CEO의 모럴 해저드=금융위기를 초래한 기업 CEO 중에는 주가 하락 전에 주식을 내다팔아 거액을 챙긴 이들도 적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몇 해 동안 버블을 키우며 금융위기 진앙지가 됐던 금융회사와 주택건설업체 등 120개 상장사 CEO들이 주가 하락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주식을 팔아치워 지난 5년간 210억달러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1억달러 이상 챙긴 CEO도 15명이나 됐다. 리먼브러더스의 풀드 회장(1억8400만달러)과 베어스턴스 제임스 케인 회장(1억6300만달러)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주식을 팔아치운 뒤 리먼브러더스 주식은 휴지가 됐고 베어스턴스 주식도 고점 대비 95%나 하락했다. 케인은 지난해 성과급만 4000만달러를 수령, “회사야 어찌되든 내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월가의 탐욕을 유감없이 내보였다.

    가장 많은 돈을 챙긴 경영진은 찰스슈왑 증권사 창업자인 찰스 슈왑으로 무려 8억1600만달러를 현금화했다. 이후 주가는 고점 대비 44% 빠졌다. 그 뒤를 주택건설업체 NVR의 드와이트 샤르 회장(6억2600만달러), BOA에 매각된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의 안젤로 모질로(4억7000만달러), 건설업체 톨브러더스의 로버트 톨(4억2700만달러)이 이었다. NVR의 주가는 2005년 고점 대비 64% 폭락했지만 샤르 회장은 미리 챙긴 돈으로 플로리다 팜비치에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가 딸린 8500만달러짜리 대저택을 구입,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톨은 자사 주가가 상한가를 달리던 2005년 중반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도했다.

    ‘시한 폭탄’을 돌리다 자기 차례가 오기 전 빠져나간 셈이다. 1990년대 기술주 거품이 일던 시절에도 50명 넘는 경영진들이 거품 붕괴 전에 주식을 팔아 1억달러 이상 챙긴 바 있다.

    ◆경제위기 도화선된 탐욕=“이익을 내라, 그러면 너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손실이 나면 너는 해고될 것이다.”

    월가의 성과급 시스템을 대변하는 구호다. 하지만 월가의 성과급 시스템이 현 금융,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월가의 수익은 신기루, 천문학적 보너스는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은행 직원들의 보너스를 높여준 투자는 결국 손해가 났지만 보너스는 깎이지 않았다”면서 월가의 성과급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다. 신문은 그 사례로 메릴린치 공동사장을 역임했던 한국계 다우 김(김도우)을 거론하면서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 그의 월급은 35만달러에 불과했지만 보너스는 월급의 100배인 3500만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메릴린치는 그해 모기지 관련 투자로 75억달러의 이익을 냈으나 이후 모기지 투자가 부실화하면서 손실액 규모가 2006년 이익의 세 배까지 치솟았다. 2006년 메릴린치 임직원들은 성과급 보너스로 50억∼60억달러를 손에 쥐었지만 정작 회사의 이익은 몇 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기루였다는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의 루시안 벱척 교수는 “투자은행 전체가 왜곡된 성과급 체계 위에 서있었다”면서 “보상 체계는 위부터 아래까지 온통 결점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은행 경영진들이 성과급 체계에 따른 보너스를 타내기 위해 고안한 각종 ‘머니 게임’을 벌이다가 금융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조남규 기자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한 적이 있다.

통상 ‘공군 1호기’와 ‘공군 3호기’로 부르는데 1985년 도입된 보잉737 기종으로, 탑승 인원 40여명 규모다. 수명이 다해 2010년쯤이면 폐기처분해야 할 정도로 낡은 기종이다. 대통령은 이 전용기를 중국, 일본 등지를 방문할 때만 이용한다.

항속 거리가 짧은 탓에 동북아 지역을 벗어나는 순방에는 무용지물이다. 미주, 유럽 지역은 물론 동남아 순방 시에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점보기를 임차해야 한다. 임차 비용은 한 번에 16억원 정도. 그래서 시쳇말로 ‘본전을 뽑기 위해’ 필요한 순방국 주변의 몇몇 나라를 묶어서 가곤 한다. 묶이는 나라 중엔 시급한 현안이 없는 국가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낭비라면 낭비다.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전용기를 보잉 747 또는 A380(에어버스) 등 대형 기종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하자 논란이 거세다.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대통령 전용기 타령이냐”는 반발이다. 노무현 정부의 전용기 도입 추진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했던 한나라당의 근시안적 행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미국에서도 레이건 행정부 전의 대통령들은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두려워 선뜻 전용기 교체를 추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어느 나라보다 요청되는 나라다. 전용기가 생기면 대통령 뿐 아니라 총리도 현안이 있는 나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실무형 순방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전용기 사업은 지금 시작해도 빨라야 2012년에야 도입이 가능하다. 이제부터라도 정략적인 논란은 그만두고 전용기 도입의 대차대조표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실속 있는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한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4·19, 6·10항쟁 거치며 정치도약…이젠 이념대결 벗고 국민통합을” 

이만섭 전 국회의장(76)은 1963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4년 3월 정계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41년 동안 정치를 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을 두 차례(14, 16대) 역임하며 8선의 관록을 쌓았다. 정치권에 몸담기 전에는 정치부 기자로서 자유당 정권 말기부터 한국 정치를 지켜봤다. 가히 ‘헌정 60년의 산증인’이라 부를 만하다. 이 전 의장을 지난 6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정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지난 헌정사, 정치사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의 헌정사는 영욕이 엇갈린 상처 많은 영광이었어요. 9번 개헌 중에 3번만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을 뿐, 나머지는 정권 창출과 연장을 위해 비합법적으로 통과됐거든.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3·15 부정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집권은 한국 정치의 질곡이었지. 다행히 1987년 6·10민주항쟁 당시 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이 이뤄졌는데, 20년간 이 헌법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도 민주 시민들, 나라를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해요.”

―국회 속기록에 국회의원 아닌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름이 올랐지요.

“4·19 이후 4대 국회에서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됐을 때였어요. 4·19혁명은 성공했지만 의석에선 여전히 자유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어 부정선거에 개입한 자유당 간부들이 구속을 피할 수 있게 됐지. 이건 민심을 역행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2층 기자석에서 부결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화가 나서 ‘이 자유당 도둑놈들아∼’라고 소리를 질렀던 말야. 그랬더니 사회를 보던 민주당 출신의 곽상훈 국회부의장이 기자석을 향해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하시오’라고 제지해서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는데 나중에 삭제했더군.”

―한국 정치가 질적 도약을 이뤘던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4·19학생혁명은 한 단계 도약이었고 6·10항쟁은 제2의 도약이였다고 생각해. 4·19혁명은 부당한 방법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세력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고, 6·10항쟁은 무력을 동원해 부당하게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헌법 정신이 발현된 의거였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극적인 부침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요.

“전부 다 기억에 남죠.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은 52년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개헌, 54년 사사오입 개헌, 58년 보안법 파동 등을 겪으면서 당내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이후 몰락의 길로 들어섰어. 박정희 정권도 69년 3선개헌과 유신헌법 이후 차지철 실장 같은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종언을 고했구. 어느 정권, 어느 정당이나 강경파가 득세해서 주도권을 잡게 되면 그 정권, 그 정당은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게 내 경험입니다. 항상 정치는 온건하고 합리적이어야 오래가는 법이지.”

―박정희 정권 시절, 여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을 지내지 않았습니까.

“나는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을 끝까지 반대했거든. 권력남용, 인권탄압의 책임자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같은 강경파를 쳐내라고 박 대통령에게 요구하다가 정치탄압 받고 8년 동안 정치를 못했어요.”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 온 지도자들을 평가하신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는데 초석이 된 분이고 일제 때도 한평생 독립운동하신 분으로 높이 평가해요. 그러나 마지막에 장기집권, 강경정치 하고 부정선거 한 게 오점이 됐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일으키고 민족의 가능성을 개발하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킨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해. 역시 장기집권, 강경정치, 야당탄압 한 것은 마이너스야. ‘양김’(김대중, 김영삼)은 탄압받으며 민주주의에 공헌한 점을 누가 뭐래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금까지도 반목하는 양상을 보이는 건 딱해. 두 사람의 반목 때문에 8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민주주의 발전이 늦어진 거 아니겠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요.

“노무현 대통령은 모르겠어. 다만, 노 대통령이 실정한 가장 큰 원인은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는데 당선되자마자 그 당을 두 개로 쪼갰단말야. (민주진영 세력을) 다 합쳐도 힘이 모자랄 텐데 분당시켜서 열린우리당을 만든 게 국정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어.”

―헌정 60년의 흐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민심을 잘 살펴야 하고, 말뿐이 아닌 진정한 소통의 정치를 해야 됩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첫째, 국내외 정치 모두 서두르지 말았으면 해요. 소고기 파동도 너무 서두르다 일어났거든. 둘째는 말을 좀 신중히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이 말이 많아 말로써 실정했는데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특히 외교문제와 대북관계에서는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해야 합니다. 셋째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했으면 좋겠어요. 능력 있고 훌륭한 분을 적재적소에 쓴다면 100%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인사 해도 국민은 반대 안 해. 깜도 안 되는 사람을 쓰니 문제가 되는 거지.”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헌법개정은 어떠한 경우라도 여야 만장일치가 안 되면 통과하지 못 합니다. 아무리 여당이 국회 내에서 개헌 통과의석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야당이 반대하면 안 돼.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서 여야 모두 당리당략을 떠나서 연구하는 게 좋겠고, 개헌 방향은 국정의 중심을 국회로 가져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있는 현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아집과 독선으로 흐르기 쉽고, 총리와 장관들이 소신껏 일할 분위기가 되지 않거든.”

―여전히 한국 정치는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를 정체시키는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나 아니면 전부 적이란 배타적 의식이야.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어요. 정권교체가 돼서 지금 여야 모두 상대편 입장에 서 봤으니 이제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와 타협을 해야됩니다. 그리고 이제 국민통합을 해야 해요. 열린 진보나 건전한 보수나 다 똑같애. 이념 대결 치워야 해. 글로벌 시대에 언제까지 전라도, 경상도 할 건가. 중대선거구해서 지역감정 없애고 세대 대결도 없애야 합니다. 국민통합 없이는 선진화도 안 돼요. 국민통합 위해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헌 60주년, 건국 60주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자가 돼 56년 3대 국회부터 한국 정치를 지켜봤습니다. 초대 제헌 국회는 헌법 만들고 대통령 뽑고 2년 만에 끝났고 2대 국회를 구성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졌어요. 그러니 사실상 한평생 정치를 지켜보고, 정치를 한 셈이지. 사람도 회갑이 되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건국 60년이 됐으니 지금부터 새로운 도약을 하는 힘찬 출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남규, 사진 허정호 기자

미국 연수 생활 중에서

가장 그리운 게 뭐냐고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공원에서 걸었던 추억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미국이 부러운 게 몇 가지 있지만

동네마다 갖춰져있는 공원은
 
첫 손에 꼽을 만한 부러움입니다.

우리 가족이 머물던 버지니아주 비엔나시 아파트 근처에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Nottoway Park가 조성돼 있었는데

말이 공원이지 축구장과 야구장, 농구장 등이 2,3개씩 들어선

종합 운동장 수준의 공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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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삥 돌아치는

십 리 정도의 산책길을 가족과 함께 걷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특히 가을의 정취가 좋았는데,

걷고 또 걷고 또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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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이 깊어져 있었습니다.

 

어느 새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를 걷고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





또 걷다 보면,

 

우리는,

영화 '서편제'의 그 유명한 단가

'이 산 저 산'의 풍경처럼,

'백설이 펄~~펼~~휘날리는'

인적 끊긴 공원에

덩그러니 서 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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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던 겨울이 끝나면

 

어김없이 공원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옵니다.

가지엔 새순이 돋아나고
 
꽃 봉우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이맘 때 쯤이면 워싱턴 D.C.는
 
벚꽃 축제로 떠들썩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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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도

우리 가족은

 

공원으로 나가,

걸었습니다.

때론 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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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심하게 분 다음 날이면

산책로 중간 중간에

 

꺾인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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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나무들을 만나면

그러려니 하고,
 
훌쩍 뛰어 넘은 뒤

또,

걸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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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걸어가면

인근 주민들이 몇 십 달러씩 내고 가꾸는

텃밭들도 나오고

때론 코요테들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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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가구는 이들은

대부분 동양권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농경 문화의 유전자는

육식의 나라 미국에서도

여간해선 소멸되지 않는 듯해

가슴 한 켠이 찡 하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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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다보면

시나브로 땅거미가 내려 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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