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양측의 고위급 대화 조율 와중에 방미한 북한 외무성 리근 국장의 행보는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방미 행보는 기복이 심했다. 지난 24일 뉴욕 JFK 공항을 통해 입국했을 당시의 리 국장은 밝은 표정이었다. JFK 공항에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고 뒷걸음치며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카메라 기자에게는 “거기 조심하라”고 배려하기도 했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성의껏 답변해주려 했다.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에서 성 김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를 만나고 나온 후에도, 샌디에이고의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참석을 위해 뉴욕 공항을 떠날 때에도 미리 취재진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다녀온 뒤 다시 보자. 수고하라”는 말을 남겼다. 북미 고위급 대화 개최를 위한 리근·성 김 접촉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회의를 다녀온 리 국장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지난 29일 밤 뉴욕 킴벌리 호텔 현관 앞에서 감정을 폭발시켰다. 잔뜩 굳은 얼굴로 도착한 그는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이 다가오자 취재진을 밀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시큐리티(경호)가 왜 이래”라는 불평 섞인 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며칠 사이에 표변한 그의 행동에 많은 기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 그의 굳은 얼굴은 그 다음 날까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와 코리아 소사이어티 공동주최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옆문으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후 취재에서 확인된 리근·성 김 접촉 내용은 리 국장의 이 같은 태도 변화와 무관치 않았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으로 초청한 북측이 리 국장을 통해 전달한 북미 고위급 회담 양보안이 미 정부를 움직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즈워스 대표의 평양 방문 전에 ‘6자회담 복귀’와 ‘북핵 9·19 공동 성명 이행’을 약속해 달라는 핵심 내용이 북측의 양보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 국장을 초청한 NCAFP·코리아 소사이어티측은 리 국장 등 북측 대표단과의 세미나가 끝난 직후 “북측의 북핵 협상 의지가 최근 몇 달 동안 우리가 공식, 비공식 라인에서 지켜본 것 이상으로 강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2003년부터 북측 인사들을 초청해 북미 간 비공식 대화 채널을 제공한 NCAFP 내에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면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견인하기 위해 미국 등 관련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가진 인사들이 많다. 

 올해부터 NCAFP와 세미나를 공동 주최하게 된 코리아 소사이어티 에반스 리비어 회장도 ‘대북 직접 외교 옹호론자’로 자처하는 인사다.
 그는 지난 7월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출석, “오바마 정부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를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임명한 것은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고위급 회담을 원한다는 분명한 신호인데 불행하게도 북한은 오바마 정부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고 아쉬워했다. 그런 리비어 회장을 비롯한 세미나 참석자들도 북한의 핵 포기 전망에 대해선 자신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리 국장은 1990년대 초반 불거진 1차 북핵 위기부터 대미 협상을 담당한 미국통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해 이맘때에도 NCAFP가 주최한 같은 세미나에 참석,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성 김 북핵 특사, 프랭크 자누지 현 미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 등과 접촉,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탐지했다. 그런 뒤 취재진 앞에서 “미국의 여러 행정부를 대상(상대)해 왔고 우리와 대화하려는 행정부, 우리를 고립하고 억제하려는 행정부와도 대상했다”면서 “우리는 어느 행정부가 나와도 그 행정부의 대조선 정책에 맞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이후 북한이 오바마 정부가 “적대 국가와도 대화하겠다”면서 천명한 대북 ‘직접 외교’에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2차 핵실험으로 대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주일 남짓의 이번 방미 기간, 리 국장이 보인 행보는 예측이 불가능한 북측의 과거 북핵 협상 행태를 상징하는 듯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미국 미시간주 윌리엄스톤에 거주하는 린 앨런은 오른손 손목에 ‘마리화나 팔찌(인식표)’를 차고 있다. 이 팔찌는 그가 80g 정도의 마리화나를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고 대마(마리화나)를 12그루까지 키울 수 있는 환자임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선천성 혈우병을 앓고 있던 앨런은 1978년 수혈 과정에서 에이즈와 C형 간염에 감염됐다. 앨런은 구토 증세를 완화하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마리화나를 의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 중 한 명이다. 미시간주가 최근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계기로 마리화나 논쟁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리화나 논쟁 불 댕긴 미시간주=워싱턴타임스에 따르면, 미 서부 지역에 이어 아이오와 등 중동부 13개주가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 마련에 착수해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1996년 의료용 마리화나의 사용을 합법화한 이후 마리화나 논쟁의 무대는 주로 미 서부 지역이었다. 지금까지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는 모두 13개. 이 중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오리건, 워싱턴, 몬태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주 등이 서부 지역에 위치해 있고 동부 지역에선 북쪽의 변경 주인 메인, 버몬트, 로드아일랜드 등 3개 주만이 의료용 마리화나를 허용했을 뿐이었다. 애리조나주의 경우, 의사들이 마리화나 요법을 처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의료용 마리화나를 전면 합법화할 토대를 갖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시간주가 지난해 11월 이 대열에 동참한 이후 중동부 13개주가 의료용 마리화나 허용 법안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워싱턴타임스가 보도했다. 2008년 의료용 마리화나 허용 법안이 발의됐다가 단 한 차례의 청문회만 개최되고 법안이 폐기됐던 오하이오주의 경우, 미시간주의 법안 통과 이후 동일 법안이 재발의될 전망이 높아졌다. 신시내티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하이오 주민의 73%가 의료용 마리화나의 사용에 찬성한 것으로 조사돼 오하이오주가 조만간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14번째 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미시간주가 통과시킨 마리화나 관련 법안에 따르면, 암이나 에이즈 등에 걸린 중증 환자들은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 허가를 주정부에 신청하게 돼 있다. 법안 통과 이후 지난 6월 현재까지 2377명이 허가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2004년 교통사고를 당한 마이크 앵글은 의료용 마리화나를 얻기 위해 얼마 전 미시간주로 이사를 했다. 그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마약류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나 마리화나는 많이 흡입해도 수면을 유발할 뿐”이라고 마리화나 요법을 옹호했다. 마리화나 옹호 단체인 ‘마리화나 폴리시 프로젝트(MPP)’ 브루스 머켄 홍보국장은 “모든 환자들이 의료용 대마를 정원에서 자유롭게 재배하게 될 날이 도래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면서 “일부에선 마리화나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최근의 미 대통령 3명이 모두 마리화나를 피웠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의료용 마리화나 암거래 우려=미시간주 마리화나 법안은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 허가를 받은 환자가 자신을 위해 대마를 최대 12그루까지 재배할 수 있는 간병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간병인은 최대 5명의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만큼 간병인 1인당 최대 60그루의 대마를 재배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마리화나 합법화 반대 운동가들은 미시간주의 이런 정책이 의료용을 빙자한 마리화나의 불법유통을 확산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시간주 호웰시 진 베이서 경찰서장은 “이번 법안은 사실상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것이나 같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성토했다.

다른 주에서도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네소타주 의회가 지난 5월 통과시킨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은 팀 포렌티 주시사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마리화나 반대운동 단체인 ‘교육의 소리’ 주디 크리머 회장은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게 되면 청소년들에게 ‘마리화나는 약품’이라는 오도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의료용 마리화나의 확산은 궁극적으로 마리화나 암시장을 활성화해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리화나 양성화 분위기 고조=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 연방정부의 마리화나 정책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비해 완화됐다. 연방정부가 1937년 이후 대마를 불법 작물로 분류하고 있으나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 연방법을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에서는 집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약 차르’인 질 케를리코우스크도 단속 위주의 마리화나 정책을 치료 위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분위기는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정부들은 경제 침체 탓에 부족해진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의료용 마리화나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는 지난 7월 미국 내 도시로는 처음으로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액 1000달러당 18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대마 재배가 주요 농업산업으로 부상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마리화나 세금으로 재정적자를 보전하자는 차원에서 성인에게 마리화나를 전면 합법화하는 법안을 성안 중이다. 작금의 경제 침체 상황이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의 성장을 돕는 온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의 지난 5월 조사 결과, 마리화나를 양성화한 뒤 마리화나 세금을 통해 경제를 살리자는 견해는 응답자의 41%에 그쳤고 반대하는 여론은 49%에 달했다. 아직은 마리화나의 전면 양성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하나 마리화나 양성화에 찬성하는 여론이 과거에 비해 급속히 고조되는 추세라고 라스무센 측은 분석했다.

■불황에 생계형 불법재배 늘어

미국의 경기 침체 속에서 멕시코 범죄조직의 전매특허였던 대마 불법재배가 미국인들의 빈곤 탈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수단으로 대마를 불법 재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AP통신이 최근 보도했다.과거엔 의료 목적이나 환락용으로 소규모 재배되던 것이 지난해 시작된 경기 침체 이후 대규모로 불법 재배되고 있어 미 마약당국의 골칫거리로 등장했다는 것이다.미 당국이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몰수한 대마는 2007년 70만그루에 그쳤으나 2008년 들어 100만그루를 훌쩍 넘어섰다.경기 침체로 마약 당국의 단속인원이 대폭 줄어들면서 불법재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애팔래치아 마약단속국의 예드 셰멜리아 국장은 "우리가 파악하고 있기로는 지역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마를 불법 재배하는 이유는 돈"이라면서 "다른 주에 비해 경제 위기의 타격이 심했던 애팔래치아 지역 주민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대마 재배에 손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미 마약당국의 또 다른 두통 거리는 미국 국유림 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대규모로 불법재배되는 대마.

미 국립공원을 포함한 국유림 내에서 대마 불법재배 사례가 발견된 곳은 1995년 에만 해도 캘리포니아주가 유일했으나 2001년 오리곤,유타,아이다호주로 늘었고 2009년에는 지난 8월 현재 16개 주로 파악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산림청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대마 불법 재배는 미 서부 지역에 집중돼 있었으나 최근 들어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동부지역에서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불법재배업자는 주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마약조직은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멕시코 국경검색이 강화되면서 멕시코에서 유입되던 대마 양이 급감하자 미국 내에서 재배하고 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은 미 연방 의사당과 링컨기념관 사이에 조성된 정방형 광장이다.
 이곳은 미 전역과 전 세계의 워싱턴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워싱토니안들과 인근 버지니아주 주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광장의 서편에 조성된 ‘한국전 참전기념공원’도 일년이면 방문객 수백만 명을 맞고 있다. 3일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을 찾은 기자는 반가운 화환 하나를 발견했다. 한국전쟁을 형상화한 조각상들 맨 앞에 놓인 그 화환의 리본에는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WE REMEMBER YOU FOREVER’(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REPRESENTED BY CLASS 1963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대 1963년 졸업생 일동 기증)

 ‘THE PEOPLE OF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 국민)

 이 화환은 ‘사랑하는 아빠에게’라는 리본을 단 화환과 아무런 리본도 달지 않은 화환들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공원을 찾은 많은 방문객들이 리본에 적힌 문구들에 관심을 보였다. 취재 결과, 기자의 눈에 띈 이 화환은 일회성 행사용 화환이 아니었다. 꽃이 시들면 새로운 화환으로 교체되면서 올 봄부터 지금껏 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의뢰를 받은 버지니아주의 한인 꽃집에서 정기적으로 이 화환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본의 문구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지난 몇달 동안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나이에 낯선 신생국 코리아의 전쟁터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든 참전용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발전상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도 한미 양국에서 한국전쟁이 잊혀지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워런 H 위드한 ‘미 한국전 참전 기념재단’ 사무총장(예비역 대령)은 얼마 전 기자와 만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전쟁은 관심사가 아니다”면서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첫 동료였던 찰리를 비롯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을 지켜봤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피를 흘린 한국 내에서 전우의 죽음이 헛된 죽음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1995년 가을,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은 강렬했다. 더운 여름날 우비를 걸치고 행군하는 군인들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은 용맹스런 군인의 모습 대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배경과 관련해선 수많은 이론이 존재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참전용사들은 그 누군가에게 생명 같은 자식들이었다는 점이다.

 공원 내에 설치된 연못 가장자리에는 한국전쟁 당시 숨진 유엔군과 미군의 숫자가 각인돼 있다. 유엔군 사망자 62만8833명 중 미군 사망자는 5만4246명이었다.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은 1965년 7월 베트남전 추가 파병 기자회견 자리에서 “꽃 같은 우리 젊은이들, 멋진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기는 정말 싫다. 그들의 어머니가 얼마나 울고, 그들의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지 저 역시 잘 알고 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추가 파병을 앞두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제아무리 최첨단무기가 동원된다 해도 전쟁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얼마 전 한국전쟁 휴전일(7월27일)을 미국의 국가기념일로 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 법안’(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을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한국전쟁을 국가적 차원에서 기리도록 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 헌화된 화환은 자국의 꽃다운 젊은이들을 한국에 파병하기로 결단한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들에게 한국 국민들이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다. 이 화환 하나가 한미 우애를 외치는 수많은 수사를 압도하는 민간외교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5일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할 예정이다. 샤프 사령관과 함께 옛 전우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원을 찾아올 위드한 총장 등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공원에 놓인 이 화환을 보고 가슴이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조선일보 관련 기사>

2012년 8월12일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DC '6·25전쟁 참전 기념 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이날도 인근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현운종(73)씨는 6·25전쟁 때 사망한 미군을 기리는 화환을 참전 용사 동상 앞에 바쳤다. 2009년 광복절을 시작으로 1주일에 한 번꼴로 이어오고 있는 헌화다. 빨간 수국, 파란 수국으로 태극기 모습을 표현한 화환에는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으로부터…'라는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3년 동안 150회가 넘은 미군 참전 용사에 대한 헌화는 한국에서 배창모(73) 한국금융투자인회 회장 등 서울대 상대 17회(59학번) 동기생들이 뜻을 모은 데 따른 것이다.

배창모 금융투자인회 회장이 13일 서울대 상대 17회 동기생 한병무(왼쪽) F&F 회장과 함께 워싱턴 6·25참전 기념공원 헌화 사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워싱턴DC 6·25전쟁 기념공원 참전 용사 동상 앞에 화환을 놓고 있는 현운종씨.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배 회장은 2009년 뉴욕 맨해튼의 배터리파크를 방문했다가 그곳에 있는 6·25 참전비 앞이 썰렁한 것을 보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숨진 미군 장병들의 이름 앞에 꽃다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보은이라 생각했다.

그는 얼마 후 서울 상대 17회 동기 모임에서 미국의 6·25 참전 기념비에 대한 헌화를 제의했고, 동기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배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김승만 한테크 회장,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심춘석 이포CC 회장, 배정운 철강신문 회장, 성하현 한화리조트 부회장, 한병무 F&F 회장 등이 헌화 추진위원이 돼 3000여만원을 모금했다. 헌화 장소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워싱턴의 참전 공원으로 결정했다.

마침 배 회장의 용산고 동기인 현씨가 워싱턴 인근에 거주하는 데다 그의 부인이 꽃집을 운영하고 있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연세대 상대 출신으로 미 농무부, 의회 도서관 등에서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한 현씨는 "내가 화환을 들 힘이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헌화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서울 상대 동기회는 모금한 돈을 꽃값으로 보냈고, 작년 초 2700만원을 2차로 모금했다.

배 회장은 "6·25 참전 80대 노(老)병사들이 찾아와 화환을 보고는 '우리 삶이 헛되지 않았다'며 울기도 한다"면서 "우리도 헌화를 계속할 것이지만 이제 미국 교민들도 직접 나서서 사는 동네마다 미군 6·25 참전 기념비를 세운다면 한미 간 교감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조 윌슨 미 연방하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은 10일 그 어느 날보다 힘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전날 미 상·하원 합동회의장에 참석한 그는 연설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거짓말이야”라고 소리쳤다가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미치 매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존 뵈너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마저 “윌슨 의원의 행동은 부적절했다”면서 한목소리로 그의 사과를 권유했다. 윌슨 의원은 당일 저녁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윌슨 의원은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 라디오 방송에 나와 “전날 행동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거짓말"이라고 외치는 조 윌슨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면서 “이제 서로 헐뜯지 말고 미 국민들에게 정말 중요한 논의를 해보자”면서 윌슨 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윌슨 의원의 공개 사과를 압박했다. 제임스 클리번 미 연방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윌슨 의원이 하원 회의장에서 공개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제재 결의안 상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 국민과 언론의 반응은 한층 더 매서웠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은 윌슨 의원이 대통령에게 소리치는 장면을 목격한 전날 저녁부터 이날 오후까지 무려 50만달러가 넘는 선거 후원금을 윌슨 의원의 내년도 중간선거 경쟁자인 민주당 랍 밀러 후보 진영에 기부한 것으로 발표됐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윌슨 의원이 1964년 의사당에서 동료의원과 격투를 벌인 스트롬 서먼트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좌관 출신이었다고 소개하면서 “난장을 치는 정치 행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전통인 듯하다”고 비꼬았다.
 
윌슨의 ‘야유’ 소동에는 한국의 국회까지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가 별도의 기사를 통해 전기톱이 등장하는 한국 국회의 폭력상을 전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국회에서 연설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한국 국회의 이미지가 ‘의사당 폭력’의 대명사격이 된 셈이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coolman@segye.com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4일자 한국 관련 기사에서 동해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를 표기한 지도를 게재했다.

 문제의 지도가 첨부된 NYT의 기사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 활동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예산 축소와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기사와 일본해 표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NYT의 외교안보 전문기자인 데이비드 생거도 지난 6월16일자 기사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 언급을 인용, “미국은 ‘일본해’에서 북한 선박과 화물선을 추적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력과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썼다. 일본해 단독 표기는 NYT의 관행이다. 미국의 다른 유력 신문과 소속 기자들도 거의 모두가 이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연안호 선원 석방’ 기사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행 표기하면서 동해를 앞세웠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뉴스거리가 되는 게 작금의 미 언론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관행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동해 알리기’ 광고를 게재한 가수 김장훈씨와 같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개선될 수 있는 장기적 과제다.
한일 과거사 현안과 관련된 미국 내의 ‘일본 편향’ 기류가 미 언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워싱턴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일 과거사 관련 활동가들은 미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일 과거사 현안에 눈을 감거나 ‘일본 편향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07년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대표는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지일파 관료들과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위안부 결의안에 반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코틀러 대표가 실명으로 지목한 한 싱크탱크 인사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국무부 요직에 발탁됐다. 부시 행정부에서 동아시아 현안을 담당했던 인사는 정권이 바뀐 뒤 싱크탱크로 돌아갔다.

  미 예일대에서 국제 관계학를 전공한 코틀러 대표는 누구보다 일본을 좋아하는 국제관계 전문가다. 처음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어느 일본인 가정집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 그였지만,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신념으로 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연구소의 일본계 후원금이 뚝 끊겼다. 어떤 싱크탱크들은 행사 초청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미 정부 내의 일부 관료와 싱크탱크, 미 언론이 일본을 중심으로 한통속이 되어 돌아가는 요란한 만화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일본의 선거혁명으로 철옹성 같던 자민당 체제가 54년 만에 무너지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질적으로 변화된 일본의 새 정부를 맞아 신미일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워싱턴 외교가는 ‘대등한 미일 관계’를 내세운 하토야마 유키오 차기 일본 총리 시대에도 부시 정부 시절의 굳건했던 미일 동맹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전망하는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가 부시 정부의 미일 관계를 복원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선 곤란하다.

 34년 동안 일본 외교관으로 봉직한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는 미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인 2006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밀월관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같은 과거사 문제로 이웃인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는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주력하는 일본 정부의 외교 정책은 잘못됐다고 진단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일본의 안하무인격인 처신은 미국의 침묵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일본이 한, 중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아시아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 부시 정부의 잘못된 외교 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현안에 눈감았던 부시·고이즈미 밀월 기조에서 탈피, 미래지향적인 동북아 정책 구상을 펼쳐보이길 기대한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아래는 조선일보 정우상 논설위원이 2012년 9월13일자 조선일보에 쓴 칼럼.

[태평로] 60년 전 미국이 남긴 두 가지 불씨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장 2조·1951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이 조약은 일본의 전후(戰後) 배상과 영토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일본은 이 조약에서 자기들이 한국에 반환할 섬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논리대로라면 조약에 언급되지 않은 한반도 주변 섬 3000여개도 일본 땅이라는 식인데 이건 말 그대로 억지다. 그러나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지역을 반환하라'고 했던 1943년의 카이로선언,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을 이행한다는 1945년의 포츠담선언,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시한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SCAPIN) 677호와 비교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에 관한 규정이 흐릿해진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1947년 3월 1차 초안부터 1949년 11월 5차 초안까지 독도를 한국 땅으로 명기했다. 그러나 1949년 11월 19일 주일(駐日) 미 대사관의 정치 고문 윌리엄 시볼트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건의서를 미국 정부에 보내면서 12월 6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일본 땅으로 둔갑했다. 일본은 1945년 패전 직후부터 독도를 포함해 침략으로 강탈했던 땅을 끝까지 움켜쥐려고 로비를 했다. 그러나 영국·호주 등 다른 연합국들이 6차 초안에 반발하자 미국은 이를 폐기했고 7차 초안부터 조약 체결 때까지 독도에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 편을 들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멋대로 해석할 '불씨'를 남긴 것이다. 노다 일본 총리가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성립 과정에서 일본에 다케시마(독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 요청을 거부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도를 일본 땅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는 일본에 성난 눈빛을 보내지만, 일본은 미국 입을 쳐다본다. 이번에도 일본 고위 외교관이 미 국무부에 달려갔고 일본 기자들은 미 국무부 대변인에게 집요하게 독도에 대해 질문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한일 양국에 '냉정과 침착'을 주문했다. 미국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3차 아미티지 보고서'는 중국을 견제하려면 "한일 양국이 역사적 견해 차이를 부활시키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고 했다. 그 모습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지 않고 남북한 모두에 '냉정과 절제'를 요구했던 중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국이 독도와 함께 남긴 또 다른 불씨는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히로히토 일왕을 전범(戰犯) 재판에 세우지 않은 것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성노예 문제를 부정하는 '집단 망각증'에 빠진 바탕에는 처벌되지 않은 전범 일왕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전후 일본을 냉전 시대 동아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기 위해 패전국으로 단호히 다루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도 독일처럼 양심적인 국가로 변모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전쟁범죄 처리에서 미국이 일본의 형편을 봐줬던 1951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계속 비정상적인 질문을 하면 이제라도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미국이 1951년 그때처럼 일본에 이중 신호를 보내면 한일 관계는 부서지고 동북아에서 미국 위상도 함께 흔들리게 될 것이다.

*미국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정책·법리 분석을 제공해온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2014년 가을 발간한 '미일 관계 보고서'에서 일본의 과거사 부정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미국 행정부 차원의 대응은 아니지만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태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행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잘못된 역사 대응 행태에 제동을 건다면 한일 과거사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될 것이다. 다음은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4년 9월29일자 보도와 사설.

일본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데 대해 미국 의회와 전문가들이 정면 비판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발간한 '미·일 관계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과 관련해 "관방장관은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지만, 재검토 자체가 과거 있었던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시켰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고노 담화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한·일 간 협상의 산물로 만들어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회조사국은 이달 초 고노 담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등이 입각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제국주의 시절을 미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상처를 들쑤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 행태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결국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전문가들은 "2007년 미 하원의 위안부 규탄 결의안이 32년 전 아사히(朝日)신문에 게재된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허위 증언을 근거로 했다"는 일본의 일부 정치인·언론 주장도 정면 반박했다. 아사히신문은 1980년대 초 보도한 요시다의 위안부 강제 연행 주장 기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며 최근 뒤늦게 취소했다.

미 하원 결의안 작성에 관여했던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민디 커틀러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 소장 등은 29일 정치 정보지 '넬슨 리포트' 공동 기고를 통해 "요시다 증언은 당시에도 논란이 있어 위안부 결의안 작성 과정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인도·태평양 전역에 걸쳐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 위안부 시스템을 조직하고 관리했음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문서와 증언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윤정호 특파원

[사설] '日의 역사 退行' 비판한 美 의회 보고서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최근 발표한 미·일 관계 보고서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역사 퇴행(退行)적 언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것이 결국 미국의 이익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역사적 상처를 들쑤시는 아베 정권의 행태"라는 표현을 써가며 "한국과 중국을 당혹스럽게 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를 부분적으로 철회하는 불일치한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재검증한 것에 대해 "(1993년 고노 담화로 내놓은) 사과의 정통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의 정책 방향에 대한 자문 기관인 CRS가 발간하는 보고서는 미국 조야(朝野)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도가 매우 높다. 이번 보고서는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고노 담화 재검증 이후 부쩍 커진 미국 정치권의 일본에 대한 우려를 보여준다.

CRS는 이달 초 구성된 아베 2기 내각에 대해서도 "과거 일제(日帝)의 행위를 찬양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여럿 포함됐다"고 했다. 또 아베 총리가 올 4월 한 사찰(寺刹)의 전범(戰犯) 추도 행사에 보낸 서한 내용과 작년 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까지 언급하며 "한국과 중국을 격앙시키는 의식(儀式)적 제스처를 반복하고 있다"고도 했다. CRS 보고서가 이처럼 강한 표현을 써가며 일본 총리의 서한을 문제 삼고 내각의 성격까지 거론한 것은 드문 일이다.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 및 전략적 균형 유지를 위해서는 순조로운 한·일 관계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그러나 일본 쪽 분위기는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여당인 자민당 정책조사회는 고노 담화를 사실상 폐기하는 '대체(代替) 담화'를 내각에 요구했고, 워싱턴에선 과거사 문제를 덮으려는 로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 정부의 대일(對日) 대화 복원 노력에 대해서마저 '한국이 굴복했다' 같은 치기(稚氣) 어린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일본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마저 아베 내각의 폭주에 대해 얼마나 불편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일본 정치 지도자들만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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